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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금융상품 '다양화'가 능사 아니다 [thebell note]

이지혜 기자공개 2021-11-09 08:00:38

이 기사는 2021년 11월 03일 08:0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ESG금융이 활성화하면 ESG경영도 잘 굴러간다. 선순환의 굴레가 만들어진다.“ 한 회계법인의 임원이 남긴 말이다. ESG금융의 의미를 짚어준다.

ESG경영을 펼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때 ESG금융상품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발행사의 관리책임이 무거워지지만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기업이 필요자금을 ESG금융으로 조달한다는 의미는 ESG경영을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여서 홍보효과가 나타난다.

온갖 금융상품에 ESG가 적용되는 이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ESG금융 발행사는 여전사와 공기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ESG경영이 재계 최대 화두가 되면서 올 들어 일반기업으로도 저변이 넓어졌다. 금융상품도 기존 공모 회사채 중심에서 ABS, 사모채, CP, 대출, 펀드 등으로 다양해졌다.

문제는 자본시장을 왜곡할 소지가 있는 금융상품마저 ESG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는 점이다. ESG 사모채와 장기CP가 대표적이다. 사모채는 취약한 수요기반에 따른 유동성의 한계를 안고 있다. 공시의무도 없다. 차입구조의 질이 떨어지고 시장의 투명성을 흐릴 수 있다.

만기 1년 이상의 장기CP는 경제적 실질이 장기 회사채나 다름없지만 단기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발행된다. 장·단기 금리가 왜곡될 소지가 큰 것은 물론 크레딧 리스크를 시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부실하다.

ESG 사모채와 장기CP는 한국거래소의 SRI채권 플랫폼에도 등록되지 않는다. 사후보고와 자금관리에 대한 시장감시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질 수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 ESG 타이틀을 씌워 사모채와 장기CP를 발행한 기업은 신용도가 우수했다. 자본시장에 부정적 선례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그동안 사모채나 장기CP를 신용도에 문제가 있거나 공시의무를 회피하려는 기업이 즐겨 찾았던 것과 대비된다.

사모채로 원화 ESG채권 시장에 데뷔한 한국도로공사의 신용등급은 AAA다. 우리카드와 CJ라이브시티는 A1의 신용도로 ESG 장기CP를 발행했다.

ESG 타이틀을 붙이기에 적절한 금융상품인지 거를 수 있는 장치도 사실상 없다. 주관사는 물론 인증기관도 금융상품의 적절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 모두 ESG금융상품으로 조달한 자금이 어떤 프로젝트에 쓰이는지, 관리체계가 적절한지만 살핀다.

이런 지적에 발행사들은 항변한다. “금리가 더 낮은 금융상품을 선택했을 뿐이다. 자금조달 기법에 옳고 그름이 어디있냐”고.

그러나 ESG는 기업과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시민, 사회, 국가 등 공동체의 이익까지 증진하자는 목적에서 나온 개념이다. 자본시장을 왜곡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ESG 타이틀로 발행되는 것은 취지에 어긋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ESG채권을 ‘사회책임투자’채권으로 부르는 이유를 상기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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