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2월 21일 08: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1년 자본시장 키워드로 '기업공개(IPO)'가 꼽힌다. 역대급 공모주 광풍 속에서 상장 밸류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IPO가 잇따라 시동을 걸었다. 이들 빅딜이 내년 상장을 마무리하면 증권시장 개장 이래 최대 공모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기업가치가 조 단위인 IPO엔 외국계 IB가 반드시 주관사로 합류했다. 국내 시장만으로 조 단위 공모를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이제는 청약 증거금으로 60조원이 모이는 시대다. 내년 초대형 IPO 릴레이는 올해에 이어 또 한번 한국 증시의 글로벌 평판이 격상될 기회로 여겨진다.

◇수십조 밸류 IPO, 내년 릴레이 예고

올해 LG에너지솔루션(KB증권, 모건스탠리)에 이어 카카오엔터테인먼트(KB증권, NH증권), 현대오일뱅크(KB증권, NH증권, 크레디트스위스)가 IPO 주관사단을 확정했다. 이 딜은 상장 밸류가 수십조원에 달할 초대형 IPO로 꼽히고 있다.

IB업계가 주관사 경쟁을 벌이는 단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의 몸값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00조원이 제시되기도 했다. 경합 단계에서 시도한 밸류에이션이어서 '몸값 인플레'가 있었지만 이후 약 75조원의 적정시가총액으로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달라진 한국 증시를 실감케 하는 움직임이다.

역대 국내 IPO 가운데 몸값이 가장 비쌌던 건 2010년 삼성생명 딜이다. 최종 공모가가 11만원으로 확정되면서 상장 밸류가 21조원에 달했다. 공모 규모도 역대 최대 규모인 4조888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최대 규모 딜인 크래프톤(4조3098억원)은 더 높은 몸값으로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최종 공모가가 49만8000원에 확정되면서 상장 밸류가 24조3512억원에 달했다. 공모 규모는 삼성생명 기록을 깨지 못했지만 내년 1월 공모 규모가 15조원에 육박하는 LG그룹 딜이 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내년 상장이 기대되는 초대형 IPO다. 올해 카카오그룹 딜이 연달아 IPO 시장을 휘어잡으면서 기관으로부터 우호적 평가를 받았다. 증권업계에선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몸값으로 20조원을 책정한다. 증시가 받혀줄 경우 그룹사 기준 역대 최대 IPO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공모 시장도 역대 '최대' 규모 예약...SK·카카오에 이어 LG·현대도 가세

초대형 IPO에 힘입어 내년 공모 시장 역시 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현대오일뱅크 딜의 공모 규모만 합해도 2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례없는 증시 '호황'을 누렸던 올해 연간 IPO 거래액 합계가 21조원에 다다르는 수준인데 2022년에는 이를 능가하는 규모로 확장될 조짐이다.

2021년 공모 규모 21조원의 기록 역시 직전 4년치 IPO거래액을 합산한 금액과 유사해 역사적인 시장 팽창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20년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가 촉발시킨 따상 신드롬을 경험한 SK그룹과 카카오그룹은 올해에도 SK바이오사이언스(1조4917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2조2459억원), 카카오뱅크(2조5525억원), 카카오페이(1조5300억원) 등의 딜을 다수 등장시켰다.


내년에도 SK그룹과 카카오그룹은 계열사 IPO에 적극 나선다. SK스퀘어 자회사 가운데 앱마켓 원스토어(약 2000억원)가 상장 첫 주자로 등판한다. SK쉴더스(약 8000억원)도 이달 예심청구를 신청하고 IPO에 시동을 건 상태다.

LG그룹, 현대차그룹, 신세계그룹도 공모 시장에 가세하면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엔지니어링(약 1조4000억원)과 현대오일뱅크(약 2조원)가 각각 7조원, 10조원의 밸류로 증시 입성을 앞두고 있고, 신세계그룹은 SSG닷컴(2조원)이 10조원의 밸류를 타진하고 있다. 모두 과거 IPO 시장이라면 최대어급에 속하는 조단위 빅딜이다.

증권업계는 내년 공모 시장이 약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에 이어 또한번 한국 증시의 위상이 격상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국내 IPO 시장이 침체 일로를 걸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2018년에는 최대어인 애경산업의 공모 규모가 1979억원에 불과했고, 2019년에는 랜드마크 딜이 롯데리츠(4229억원)였다.

◇체급 바뀐 국내 시장, 조 단위 빅딜 거뜬

초대형 IPO가 상장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한국 공모 시장의 저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빅딜을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이 과거 수준과 눈에 띄게 달라졌다.

종전 최대 IPO였던 삼성생명 딜에선 공모주를 매입하려는 청약 증거금이 19조8444억원으로 집계됐다. 당시엔 1997년 상장한 KT&G의 11조5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SKIET의 청약증거금이 80조9017억원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63조6198억원을 기록했다. 기존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카카오게임즈의 청약증거금 58조5543억원은 3위로 밀려났다. 한국 증시의 체급 자체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IPO 시장에선 조 단위 IPO의 주관사단에 외국계 IB가 합류하는 게 관례로 굳어져 있다. 공모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면 국내 기관과 개인 투자자만으로 완판을 벌이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외국 투자 기관을 유치하는 게 IPO 완주의 핵심 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 공모 시장엔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 갱신된 코스피 최고 청약경쟁률(SKIET, 1882.9대 1)을 감안하면 웬만한 조 단위 딜은 국내 세일즈만으로 충분히 매듭지을 수 있다. 다만 상장 이후 중장기 주가 흐름까지 고려하면 미리 외국계 IB와 소통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최대 수혜자는 IPO를 주관하는 증권사다. 물론 빅딜일수록 상장수수료율이 낮아지지만 초대형 IPO는 수수료 산정의 기준인 공모 규모 자체가 워낙 크다. 대표 주관을 꿰찰 증권사의 IPO 파트는 역대급 수수료 수익을 거둘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