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 M&A]반년만에 1조→1600억, 밀리만은 왜 기업가치 낮췄나RBC비율 기준 변경, '근거 부족하다' 지적…투자자 마케팅에도 개입, 객관성 결여 논란
이은솔 기자공개 2022-01-24 08:11:43
이 기사는 2022년 01월 21일 15: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DB생명보험 매각 가격 산정의 근거로 활용된 기업가치 보고서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계리컨설팅 업체인 밀리만코리아는 딜 시작 시점엔 기업가치를 약 9000억원으로 평가했지만 반년 만에 1600억원으로 가치를 낮춰 평가했다.가치하락폭이 큰데다 그 근거로 적용한 기준 중 RBC비율의 경우 적용 근거가 명확치 않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게다가 딜 과정에서 밀리만은 가치평가 업무 뿐 아니라 투자자 마케팅 과정에도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객관성 결여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밀리만코리아는 2020년 6월 KDB생명 가치평가 보고서에서 기업가치를 1635억원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고작 반년전인 2019년 11월에는 KDB생명 지분 100%에 대한 기업가치를 8500억~9500억원로 평가했다. 같은 회사에 대한 평가를 같은 기관이 진행하면서 반년만에 82% 차이가 나는 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두 보고서 모두 산업은행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다. 2019년의 경우 잠재 매수자를 위한 기업가치 안내를 위해, 2020년의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하기 직전 구체적인 실질가치를 안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반년사이 평가한 기업가치가 80% 이상 차이가 나자, 업계에서는 매도인인 산업은행의 입맛에 맞게 가치평가 기준을 객관성 없이 제시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의혹이 나오는 배경엔 매각 가격이 자리한다. 산업은행은 이전에도 수차례 KDB생명 매각을 시도했지만 매번 6000억원 이상을 고수해 원매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KDB생명 매각의 경우 거래 성사를 위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KDB생명의 매각가를 시장에서는 2000억~3000억원에서 7000억~8000억원까지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이전 희망가와는 달리 2000억원에 매각할 의지가 있다는 의미를 시장에 내비친 것으로 해석했다.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된 KDB생명을 2000억원대에 팔기 위해서는 업황 악화와 규제 강화 등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했다는 근거와 명분이 필요했다.
평가가격 하락이 단기간 급락한 것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산업은행은 보고서에 대한 의혹을 반박했다. 앞선 산정한 건 '이론적' 가치고, 이후 산정한 건 '실질적' 가치로 후자가 더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밀리만이 작성한 2019년 11월자 보고서는 잠재매수자를 대상으로 입찰가 산정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보험업권의 표준가정(할인율 7.5~9.5%, RBC비율 150%, 투자수익율 3.1% 등)을 적용했다. 그리고 2020년 6월자 보고서는 매도자가 실제로 수용 가능한 최저가격을 산출하기 위해 작성됐다. 이 때문에 나중에 나온 보고서는 KDB생명의 고유위험, IFRS17등 제도 도입으로 인한 규제강화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가정(할인율 12%, RBC비율 250%, 투자수익율 2.85% 등)을 적용했다는 얘기다.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실질적 가치를 산정했다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있다. 금리나 투자수익률 등은 매각 대상 회사의 사정을 감안해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RBC비율의 경우 두 보고서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이유라는 평가다.
밀리만은 앞선 보고서에는 RBC비율 150%, 이후 보고서에는 250%의 기준을 적용했다. IFRS17 등 신제도 도입을 위한 규제강화를 감안한 기준 변경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2019년~2020년 사이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IFRS17 도입은 수년 전부터 예고돼 왔고, 당국도 회사들의 부담을 완화해주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만드는 추세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목적에 따라 보고서에 다른 방법론을 택했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오고 있다. 실제로 RBC비율의 경우 %를 조금만 변경해도 요구자본이 수천 억원씩 좌우되기 때문에 가치평가가 완전히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한 계리전문가는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금리가 하락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IFRS17 도입은 이미 예고됐던 부분인데 왜 후자에만 적용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자산 부채 기간이 긴 보험사는 아주 작은 가정만 바꿔도 기업가치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식이라면 원하는 가격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밀리만코리아는 국내 보험사 M&A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글로벌 보험 계리업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밀리만(Milliman)의 한국 법인으로 2002년 설립됐다. 보험사는 일반 기업과 구조가 달라 기업 가치 평가를 위해서는 책임준비금 산출, 미래 현금흐름 추정 등 계리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국내에 계리 컨설팅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동양생명, DGB생명, 오렌지라이프 매각과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의 기업공개(IPO) 등 국내 주요 보험사들의 가치평가 업무는 대부분 밀리만코리아가 담당해왔다. 따라서 보험사 M&A 시장에는 핵심적인 존재로 꼽힌다.
밀리만은 2019년 산업은행이 네 번째 KDB생명 매각을 준비할 당시 계리실사를 맡았다. 그런데 밀리만은 이 과정에서 본래 업무인 가치 산정 뿐 아니라 다른 역할에도 발벗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측 주관사 업무인 투자자 마케팅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후문이다. 산업은행은 그 공을 인정해 밀리만에 추가 수수료를 주는 방안도 검토했다. 당시 투자 유치가 워낙 어려웠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며 공정하게 기업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계리법인의 역할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1월 KDB생명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헐값매각' 논란을 반박하며 밀리만코리아를 인용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계리정보사 밀리만에 의하면 작년 KDB생명의 가치는 1730억에서 3000억원 수준이라고 추정된다"며 "매각가 2000억원은 시장가격으로 적정하고 헐값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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