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3월 08일 07: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 한복판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왕국 초석이었던 일명 '애니콜 화형식' 현장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모토로라의 독주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데 치중하다가 불량률이 11.8%로 치솟았다.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시중에 있는 15만대의 휴대폰을 회수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모두 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무려 500억원어치에 달하는 휴대폰이 잿더미로 변했다. 현장에 있던 이기태 전 무선부문 사장과 임직원, 공장직원들은 본인들이 만든 제품들이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애니콜 화형식은 무선사업부 조직문화 기강을 다잡는 계기였다. 삼성의 방향성은 '품질주의'란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 전 회장은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나", "품질에 신경을 써라 고객이 무섭지 않나"고 다그쳤다. 이렇게 쌓아올린 하드웨어 경쟁력은 삼성의 브랜드파워로 이어졌다. 혁신 소프트웨어 개발을 일삼으며 마니아층을 넓혀가던 애플을 견제할 수 있던 '힘'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났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갤럭시22 시리즈의 성능저하 논란에 휩싸였다. 고사양·고화질 게임 실행시, 성능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앱이 강제로 실행되면서 속도와 화질이 50%까지 급격하게 낮아진다는 지적이다. 일명 'GOS사태'로 불리며 비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전작인 갤럭시S21 시리즈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사양 게임을 실행할 때 발열이 지속되고 이용자가 저온화상을 입는 사례가 발생했다. 무선사업부 수장인 노태문 사장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단 '쉬운' 방법으로 조치를 취했다. 발열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큰 냉각장치(베이퍼 챔버)를 설치해야 하지만 원가절감 차원에서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다. 발열을 줄이기 위한 과정속 기술혁신은 없었다.
그럴거였다면 역대급 성능이란 마케팅을 해서는 안된다. 고가의 플래그십 타이틀을 유지해서도 안된다. 삼성은 갤럭시S22를 출시하며 최초로 4나노미터 프로세서 탑재 등 역대 '최고스팩'을 강조했다. 고사양 게임플레이를 기대하고 최신사양 제품을 값비싸게 구매했을 소비자들 입장에선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다.
삼성전자의 무선사업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 시절, 프리미엄폰 수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애니콜 수십만대를 모아 불태웠을 때의 정신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임원들은 스팩 올리기에 급급하다. 원가절감과 마케팅비 효율화로 성적을 인정받고 있다. 경영진도 이런 내부 사내 문화를 유도하며 성능저하 결정을 방조했다.
품질을 위한 혁신에는 적잖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소비자들이 기대한 모습도 '혁신 삼성'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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