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3월 31일 11: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일건설은 중흥, 호반, 우미와 더불어 광주·전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건설사다. 2기 신도시 사업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업력 44년에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24위로 낮지 않다.

다만 총수일가와 승계구도, 지배구조 등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사업이나 특별한 이슈가 없어 시장의 관심을 덜 받았던 탓도 있지만 제일건설 자체가 시장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곳이 아닌 영향이 크다. 승계구도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이유다.

◇'법인명'까지 아들 회사와 맞교환, 경쟁사와 사뭇다른 승계

제일건설은 창업자 유경열 회장에서 장남 유재훈 사장으로 지분 이전을 별다른 단계 없이 단번에 단행했다. 다만 알짜 사업부문을 장남 회사로 넘기는 동시에 법인명을 아버지 회사와 서로 바꾸는 방식의 다소 특이한 승계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우선 유 회장은 1978년 제일주택건설이란 상호를 달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 제일건설로 상호를 변경했다.

2세 승계구도에 변화가 있었던 건 2007년이다. 제일건설은 시공사업 부문을 분할해 특수관계사였던 풍경채와 합병했다. 동시에 법인명 '제일건설'을 '풍경채'에 넘겼다. 시공사업 부문을 떼어낸 제일건설은 '제일풍경채'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지금의 제일건설은 사실 옛 풍경채이고, 지금의 제일풍경채가 모태인 제일건설이란 얘기다.


결국 과거 승계 작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풍경채를 들여다봐야 한다. 당시 제일건설 지분이 3.75%에 불과했던 유 사장은 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 중이던 풍경채를 제일건설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승계를 완성했다.

풍경채는 2003년 설립된 제일건설의 특수관계사로 유 사장 등 오너일가의 지배를 받았다. 확인 가능한 공시에 따르면 합병 후 유 사장의 풍경채 지분율은 34.19%다. 당시까지만해도 풍경채를 법인명으로 사용하다가 2009년 1분기 지금의 제일건설로 이름이 변경됐다. 유 사장은 제일건설 지분을 취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제일건설 지배력을 확보한 셈이다.

현재 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제일풍경채(옛 제일건설)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제일건설은 아들 유 사장과 부인 박현해 씨, 자녀 승헌·지민 씨 등 오너일가가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오너일가의 지분율은 80% 이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사라진 상황이다.

상호를 바꿔 단 후 제일풍경채의 매출은 2008년 796억원에서 24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매출 추이를 보면 2011년 4억원, 2012년 7억원, 2013년 3억7000만원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회사로 전락한 셈이다. 그나마 2014년부터 계열사 전반에 걸쳐 주택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부 일감을 받아 400억~1000억원대의 매출을 달성했다.

반면 유재훈 사장이 물려받은 제일건설의 실적은 연일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11년까지 1187억대에 머물다 △2012년 2078억원 △2013년 3487억원 △ 2014년 5109억원 등 매년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2016년 1조22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2017년 1조1904억원을 거두면서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이 같은 성장은 제일건설로 일감이 집중된 덕분이다. 그간 제일건설은 국토부 공공택지 공급 방식인 추첨제를 악용해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 입찰로 택지를 독차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공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자회사를 설립해 동원했고 낙찰받은 택지에 제일건설과 시공계약을 맺고 '풍경채' 브랜드를 달아 주택을 공급했다.

동시에 내부거래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창암종합건설, 세종화건설, 영우홀딩스, 제이아이주택, 제이제이씨앤씨 등 특수관계사로부터 발생한 매출은 2011년 642억원에서 2016년 3027억원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직접 시행을 맡는 자체사업이 늘어나면서 내부거래액은 1135억원까지 감소했다.

◇갑작스런 전문경영인 발탁, 총수일가는 경영 이면으로

5년여 전에는 경영 일선에서 변화도 생겼다. 유 사장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회사를 이끌다 제일건설 전무를 역임한 박현만 대표이사에게 경영 전반을 맡겼다. 유 사장은 제일풍경채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으며 제일건설 사내이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2017년부터 시공능력평가와 외형을 한층 더 끌어올리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입증했다. 제일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24위를 기록했다. 서희건설과 금호건설, 우미건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재계 17위 부영주택보다 높다. 2015년 83위에서 2018년 31위를 기록하더니 2019년 20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주력 사업은 주택이다. 건설과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지만 오피스텔과 주상복합 등을 짓는 주택사업 비중이 월등히 높다. 판교대장동, 중흥3구역, 파주운정A5 등이 대표적인 사업지다.

매출 원가율은 73% 수준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깐깐하게 원가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업이익률은 약 20%로 건설업계 최상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의 신망이 두터운 만큼 제일건설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당분간 이어나갈 전망이다.

이밖에 유 회장은 창암재단을 통한 장학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창암재단은 제일건설과 제일풍경채의 지분 정리가 이뤄진 2007년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유 회장이 이사장으로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