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 매니저의 공세, SK케미칼과 치열한 수싸움 [K-행동주의 물결]⑥안다운용, 집중투표제로 압박…임시주총·주주제안 본게임 임박
양정우 기자공개 2022-03-31 10:54:34
[편집자주]
행동주의 투자에 나선 토종 헤지펀드 운용사의 기세가 거세다. 국내 대표 하우스부터 신생 운용사까지 각양각색 접근법으로 저평가된 주가를 개선시킬 묘안을 제시하고 있다. 행동주의라는 푯대는 동일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과 전략도 다양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주축 전략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기지개를 켜고 있는 'K-행동주의'의 현황을 더벨이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30일 06: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안다자산운용의 박철홍 ESG투자본부 대표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잘나가던 기업 자문 변호사 출신이다. 굵직한 경영권 분쟁과 각종 지배구조 자문을 토대로 갈고닦은 노하우를 SK케미칼의 기업 개선 작업에 쏟아붓고 있다.올해 SK케미칼의 정기주주총회 주요 안건에 안다운용이 반대를 권유한 건 전초전일 뿐이다. 향후 임시주총 개최와 내년 주주 제안 등 행동주의 '본게임'에 앞서 시도한 사전 정비 작업이다. 박 대표가 법조인 특유의 실효적 압박을 가하려 하자 SK케미칼도 긴장감을 높이면서 이미 물밑에서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SK케미칼 이사선임 여력 공략…집중투표제 활용
변호사 출신 박 대표의 행동주의 투자 전략은 큰 틀에서 다른 운용사의 펀드매니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피어그룹과 비교해 저평가의 정도가 심각한 기업이 최우선 타깃이다. 이들에게 직접 솔루션을 제시해 회사와 주주 모두 윈원하는 방식으로 투자 차익을 거두는 프로세스도 동일하다.
하지만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가하는 압박 카드에 대한 접근 방법은 다르다. 무엇보다 압박 방안의 실효성을 중시한다. 법조인 출신 운용역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안다운용의 공식 제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집중투표제를 요구한 대목이다.
집중투표제에서는 '1주식 1표제'와 달리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작동한다.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이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당 3표를 제공한 후 특정 1인에게 3표를 모두 행사하는 게 가능하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분산 투표 대신 집중 투표를 통해 지지하는 후보의 선출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SK케미칼의 정관상 이사회는 최대 10명으로 구성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2명의 사내이사와 4명의 사외이사 등 총 6명으로 이사회 진용이 구축됐다. 한마디로 신규 이사 4명을 추가할 수 있는 구조다. 안다운용은 집중투표제를 통해 신규 이사 4명을 새로 선임하는 방식으로 1주당 4표를 행사할 권리를 얻는 전략을 마련했다. 국내외 우호 지분을 포함하면 최초 2명 이상의 이사를 확보해 지배구조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수싸움은 벌써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SK케미칼은 올해 주총에서 이러한 박 대표의 접근법에 대응한 것으로 해석되는 액션에 나섰다. 안재현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예정자를 기타 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발의한 것이다. 지난 28일 이 선임 건이 통과되면서 이제 신규 이사로 추가할 수 있는 인원이 3명으로 축소됐다. 결국 안다운용이 신규 이사 선임에 동원할 수 있는 의결권이 1주당 4표에서 3표로 줄어든 셈이다.
안다운용은 SK케미칼 경영진의 이같은 대응에도 이사회 진입을 노리고 있다. 최소 1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게 가능한 데다 또 다른 창의적 발상으로 압박 전략을 구상해 나가고 있다.
◇주주요건 채운 안다, 본게임 채비 한창
원칙적으로 주총은 이사회가 소집한다. 다만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임시주총의 소집을 이사회에 청구할 수 있다. 상장 기업의 경우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청구권이 발생한다. 정기주총에 소수주주가 주주 제안을 할 수 있는 요건도 동일하다.
안다운용은 올해 SK케미칼의 정기주총에서는 주주 제안에 나설 수 있는 주주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사측 안건(제1호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제3호 이사 선임의 건, 제5호 이사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에 반대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행동주의 스탠스를 취했다.
하지만 이제 1%가 넘는 우호 지분의 6개월 보유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이번 정기주총 이전에 이미 2.7% 수준의 우호 지분을 확보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임시주총와 내년 주주 제안에 나서는 본게임이 예고돼 있다. 여기에 향후 공식적 주주 제안에 나설 때 우호 세력으로 등장할 해외 기관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표뿐 아니라 안다운용 자체가 해외 네트워크가 출중한 헤지펀드 하우스다.
WM업계 관계자는 "안다운용은 향후 임시주총과 내년 주총에 제시할 안건을 이미 짜놓은 상태"라며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한 설득력을 확보한 후 박 대표의 사외이사 선임을 확정짓는 게 일단 큰 골조"라고 말했다.
◇더블카운팅 감안해도 저평가…SK바사 지분 일부 처분 제안
SK케미칼의 시장 저평가는 운용업계에서 끊임없이 지적된 사안이다. 디스카운트 상태라는 가장 큰 근거는 자회사에 비해 시가총액이 턱없이 작다는 점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시가총액은 11조5000억원에 달한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6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반면 SK케미칼의 시총은 2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본업인 'Green Chemicals' 사업부문과 'Pharma' 사업부문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동시에 자회사의 막대한 지분가치를 거머쥐었으나 과도한 저평가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물론 국내 그룹사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하는 경향이 강해 모기업은 늘상 '더블카운팅'에 따른 할인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SK케미칼이 저평가 상태인 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단순히 시가로 환산한 가격(약 7조8000억원)에 국내 지주사 할인 평균인 40%를 적용해도 4조6000억~4조7000억원에 육박한다. 핵심 사업부문의 합산 사업가치(약 9700억원)까지 감안하면 SK케미칼의 기업가치에 가해진 디스카운트가 작지 않다.
박 대표는 기업 전문 변호사 출신답게 밸류에이션에 대한 접근법도 확고하다. SK케미칼이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30~40%)을 제외한 나머지를 사실상 현금성자산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SK케미칼 내부에 시총을 넘어선 현금(3조5000억원 안팎)이 쌓인 것으로 접근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내재가치를 외부에 어필하려면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의 일부 매각과 처분 신호가 필요한 것으로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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