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구조조정 포트폴리오 점검]‘빅딜’의 그늘…퇴로가 없다③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M&A 실패…대한항공-아시아나도 불안
고설봉 기자공개 2022-08-18 08:17:02
[편집자주]
KDB산업은행은 한국 산업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기업금융부문과 구조조정본부로 대변되는 산은의 기업금융 시스템은 경제 상황과 기업 여건 등 변화에 맞춰 모습을 달리해 왔다. 최근 몇 년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이란 숙제를 푸는데 진땀을 빼고 있다. 성공한 구조조정도 있었지만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기업들도 많다. 더벨은 산은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을 살펴보고 현재 남아 있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을 집중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16일 10: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빅딜’의 그늘은 넓고 짙다.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 실패를 계기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상처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영화 기대감에 눌려 있던 수많은 갈등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잠재돼 있던 불만이 대우조선을 누르는 상황이다.첫 발을 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빅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시장에선 조선업 빅딜에 이어 항공업 빅딜도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결합심사란 허들을 넘지 못할 만큼 애초에 M&A 전략이 정교하게 짜여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산은이 항공업 구조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년 넘게 산은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KDB산업은행이 추진한 핵심 산업군 내 경쟁 기업간 인수합병(M&A)은 또 다른 숙제를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유럽연합(EU)이 빅2 조선사들의 기업결합을 불승인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조선업 재편 및 구조조정 기업 엑시트(EXIT) 전략을 짰던 산은의 계획은 백지화됐다.
산은은 2019년 1월 현대중공업그룹을 상대로 빅딜을 추진했다. 산은이 대우조선 보통주를 현대중공업그룹이 만드는 중간지주회사(이하 한국조선해양)에 현물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은 산은에 보통주 및 우선주를 발행하기로 약정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3일 EU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간 기업결합 건에 대해 최종 불허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산은과 현대중공업그룹간 계약은 해제됐다.
실패한 M&A가 남긴 충격은 크다. 대우조선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M&A 발표 때부더 격화되던 노사갈등은 이제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 노노갈등으로까지 확전됐다. 갈등의 층위가 복잡해지고 골도 깊어지면서 대우조선 경영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M&A 과정에서 수면 아래 가라 앉았던 대우조선 본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M&A가 진행되면서 매출 감소 등 영향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재무구조 개선 등에 대한 문제도 뒷전으로 미뤄졌었다.
대우조선은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던 2015년 이후 수주 가뭄까지 겪으며 최근 6년간 매출이 71% 감소했다. 실제 2015년 15조4436억원에 이르던 매출은 지난해 4조4865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2조1244억원에서 1조7546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매출 대비 영업손실률은 13.8%에서 39.1%로 3배 가까이 높아졌다. 고정비 지출 등을 감당하면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최소 연간 7조~8조원의 매출을 달성해야 하지만 대우조선의 지난해 실적은 그 절반에 그친 셈이다. 또 분식회계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순손실 규모는 5조6000억원으로 불었다.
본업 경쟁력 약화에 따른 재무구조 불안정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5년 3000%에 육박했던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2020년 166%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최근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523.2%로 지난해 말 379.0%대비 144.2%포인트 높아졌다.
산은의 부담도 다시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 보유에 따른 비지배지분순손실 753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산은 재무제표에 그대로 계상됐다. 대우조선의 경영 악화로 생겨난 리스크가 산은에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
빅딜 무산과 수주 감소, 재무구조 악화 등 현재 대우조선이 겪고 있는 문제는 어느 하나 손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산은은 새로운 원매자를 찾아 M&A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특히 최근 조선업 경기가 최고점을 찍은 가운데서도 대우조선의 경영 정상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새로운 M&A 전략을 짜는데 부담이다. 조선업 경기가 좋을 때 빅딜에 매몰돼 제3자 매각에 대한 기회를 잃은 결과란 평가도 나온다.
◇붕괴 위험 높아진 항공업 빅딜…타이밍 놓치면 기회 잃는다
항공업 빅딜을 보는 시장의 눈초리도 예사롭지 않다. 조선업 빅딜 실패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M&A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기업결합심사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M&A에도 복병으로 등장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M&A에 대한 국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는 지난 2월 마무리됐다. 하지만 해외 주요 경쟁당국으로부터 승인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양사 통합으로 인한 독과점 및 외국 항공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기업결합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EU, 영국, 호주의 경우 반대 기류가 만만치 않다. 양사 통합 이후 독과점 우려 해소를 위해 신규 항공사 진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양사 통합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가 통합될 경우 한국-미국 노선을 사실상 독점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이 양사 통합에 제동을 걸고 나선 점도 문제다. 유나이티드항공이 최근 미국 경쟁당국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 심사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이미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를 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얼라이언스에 소속돼 있는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M&A되면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유나이티드항공의 입지는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빅딜이 좌절되면 산은은 조선업 빅딜 때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항공업 빅딜을 전제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대한항공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등 변수를 감안하고서도 빅딜 구조 자체가 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칼그룹에 유리하게 짜여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에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10.66%를 확보했다. 더불어 한진칼에 유동성 지원을 위해 운영자금 등 명목으로 대출을 실행했다. 지난해 말 기준 산은은 한진칼에 4493억원의 대출을 내줬다.
산은은 또 아시아나항공 빅딜을 추진하면서 대한항공에 대규모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19년 당시 대한항공은 유동성 부족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산은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 아시아나항공 1조7000억원 등 총 2조900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가운데 대부분 자금이 집행됐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본부의 역할도 훨씬 더 방대해진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 빅딜을 위해 산은이 대한항공과 그 모회사인 한진칼에까지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한진칼그룹 전체를 산은에서 직접 관리해야하는 상황으로 항공업 빅딜 후유증이 나타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원과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에 대한 지원 등 대규모 투자가 단행된 만큼 빅딜에서 발을 빼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빅딜을 전제로 산은이 한진칼그룹에 제공한 다양한 대출채권과 유무형 자산의 회수도 숙제로 남았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M&A 관련해 다각도에서 대안을 검토 중"이라며 "항공업 빅딜의 경우 결합심사 주체는 대한항공으로 산은에서 직접 이 부분을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진행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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