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유가 변동성, 어려운 변경계약 '리스크' [다시 뜨는 중동 허와실]재정균형유가 미달 시 불확실성 가중, 출혈 수주 가능성도
전기룡 기자공개 2022-10-12 07:47:09
[편집자주]
중동시장은 과거 한때 우리 건설사들에게 '수주 텃밭'이었다. 국내 건설업계가 세계에서 수주액 2위로 거듭난 배경에는 중동발 오일머니가 있었다. 그러나 2013년경 저유가 충격으로 인한 '중동 쇼크'가 걷잡을 수 없이 지속되자 국내 상당수 건설사가 현지 부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 중동 시장에서 최근 들어 네옴시티 등 대규모 개발 소식이 들려오자 국내 건설사들이 너도 나도 수주전에 뛰어드는 양상이다. 중동 시장 리스크는 과연 사라진 것일까. 이를 짚어보고 각 건설사별 주요 프로젝트 실황은 어떤지 등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0월 11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동은 수주 텃밭이지만 고질적인 리스크가 존재한다. 유가의 등락이 발주 계획이나 물량의 변동성으로 이어진다는 부분이다. 발주 주체가 산유국 혹은 산하기관이라는 점에서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원유 수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지정학적인 리스크도 중동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공기 연장이나 공사비 증액 등의 과정이 수반되야 한다. 하지만 변경계약이 불가능한 경우도 상당수다. 자칫 중동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고도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최근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시장이지만 장밋빛 전망만 안고 접급하기 어려운 곳이란 얘기다.
◇고질적인 리스크 '유가 등락'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아람코(Arabian-America oil company)라는 회사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화학이자 정유사인 아람코는 국내 건설사들의 주요 발주처로 꼽힌다. 포트폴리오가 제한적이지만 세계 시가총액 최상단에 위치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랬던 아람코지만 2020년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2분기 이익 규모가 66억달러에 그쳤다. 직전 분기 167억달러의 이익을 거뒀지만 두바이유가 배럴당 19달러까지 추락하는 등 저유가 기조가 팽배해지자 실적이 급감했다. 애플에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어준 것도 이 시기다.
실적 하락은 자본적 지출(CAPEX)의 축소로 이어졌다. 당시 아람코의 CAPEX 계획은 200억달러선에 머물렀다. 최근 5년간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현대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의 참여가 유력했던 40억달러 규모 '자프라 가스 플랜트' 발주도 연기됐다.
아람코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회복된 지난해부터 다시금 반등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한때 두바이유가 배럴당 122달러를 넘어서자 분기 이익 400억달러를 달성했다. 아람코로서는 그간 위축됐던 CAPEX 계획에 집중할 여력이 생긴 셈이다.
실제 아람코는 올해 500억달러 규모의 CAPEX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계획에서 100억달러가량 상향된 수준이다. 계획안에는 업스트림 석유와 천연가스에 각각 30%, 27%를 다운스트림에 33%를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업스트림은 개발·채취를, 다운스트림은 정제·판매 단계를 의미한다.
아람코의 사례처럼 중동 산유국들 대부분은 원유 가격에 민감한 구조다. 재정균형유가라는 익숙지 않은 지표가 존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정균형유가란 국가의 재정이 유지될 수 있는 최소 유가로 재정균형유가보다 유가가 높으면 '흑자재정', 낮으면 '적자재정'에 직면하게 된다.
주요 발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배럴당 66달러)를 비롯해 이라크(66달러), 쿠웨이트(64달러), 오만(62달러), 아랍에미리트(60달러) 등이 60달러선에 재정균형유가가 형성돼 있다. 현 유가가 재정균형유가보다 낮게 형성될 시 신규 혹은 기존 수주 현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대외 요인으로 지체상금 발생 가능, 리스크 관리역량 요구
유가 이외에도 중동에는 리스크가 산적해 있다. 2010년대에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본거지를 뒀던 수니파 무장단체 IS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존재했다. 폐쇄적인 시장 분위기 탓에 시공사에 무리한 요구가 있을 수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원자재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가 갑자기 발생하기도 한다.
중동 수주를 노리는 건설사라면 감내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 과정에서 공기 연장이나 공사비 증액과 관련된 변경계약을 체결해야 리스크의 현실화를 피할 수 있다. 자칫 변경계약에 차질이 생긴다면 출혈 수주로 남게 된다.
특히 대외적인 변수로 공사일정에 문제가 생길 시 변경계약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변경계약이 무산될 경우 지체상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체상금이란 계약기간 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시공사가 발주처 측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의미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광물청인 마덴사로부터 수주한 '마덴 롤링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로 약속한 공기를 지키지 못했다. 완공 후에도 일부 설비에서 문제가 발생해 추가 하자보수 공사도 이뤄졌다.
추가 하자보수 공사로 약속한 공기보다 2년가량 지연됐다. 마덴 측은 1400억원의 지체상금을 요구했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를 지불했다. 이후 국재중재 과정을 거쳐 삼성엔지니어링은 손실 규모를 줄이는데 매진했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지만 롤링밀 프로젝트는 삼성엔니지니어링이 겪었던 중동발 대규모 손실의 시발점이 됐다.
유가를 제외하고도 중동시장에 불확실성이 상당하다는 점, 선제적인 변경계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문제는 변경계약을 체결하기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슬람법에 시공사가 예측불가한 상황에 직면할 경우 계약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존재하지만 개별 국가의 법안에 이슬람법과 상반되는 내용이 다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법에는 원칙적으로 물가상승 등이 공사비 증액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Owner-at-risk(물가상승이나 원자재 수급 지연으로 공사계약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 'Threshhold approach(시공사가 물가상승에 대한 위험을 사전에 결정한 한계까지만 부담할 권리)' 등 기타계약조항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개별 국가마다 법안이 다르다 보니 변경계약의 근거가 되는 불가항력을 인정받기 힘들 수도 있다. 기껏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고도 리스크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시장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 프로젝트들의 면밀한 리스크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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