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세 가지 '빅딜'로 본 시사점 [반도체 M&A 전략을 묻다]④우려 많았던 M&A를 성공 사례로…절묘한 타이밍, 독특한 딜 스토리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09 09:38:03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7일 10: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산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SK그룹은 적극적인 M&A로 여러 반도체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SK하이닉스(메모리 반도체)부터 SK실트론(웨이퍼), SK실트론CSS(SiC 웨이퍼), 키파운드리(파운드리)까지 모두 M&A를 통해 인수한 계열사다.하지만 모든 M&A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0여년 전 통신회사 SK텔레콤이 메모리 기업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할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반도체 사업을 안 해본 그룹이라 M&A 성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는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했다. SK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웨이퍼에서 파운드리까지 과감하게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SK그룹이 구사해온 반도체 M&A 전략은 시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M&A는 타이밍"…하이닉스 스토리
SK텔레콤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타이밍을 잘 맞춘 M&A 사례로 지금까지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다.
현재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 구도가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과점체제로 굳어졌으나 이렇게 되기까지 치열한 치킨게임(출혈경쟁), 국가 대 국가 양상의 정부보조금 전쟁이라는 지난한 역사를 지나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메모리 기업은 20여개사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펼쳐진 치킨게임으로 많은 기업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고,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해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대만 정부는 파워칩세미컨덕터, 난야테크놀로지 등 자국 D램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제공했고, 일본과 독일도 각각 자국 D램 기업 엘피다와 키몬다에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도산을 막진 못했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결정한 2011년은 D램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며 수많은 메모리 제조사들이 파산, 시장이 변곡점을 맞고 있던 시점이다. 통신회사가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는 데 대해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 SK텔레콤 개발사업실장으로 딜을 주도했던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 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과점체제가 되면 D램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치킨게임은 벌어지기 어렵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메모리 시장이 이제는 과점체제가 확고해져 '빅딜'이 일어나기가 어려운 구조로 굳혀졌다. SK그룹이 2010년대에 메모리 기업을 인수할 마지막 기회를 잡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는 내수산업 주력이던 SK를 수출제조기업으로 키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M&A는 타이밍'임을 보여준 딜인 셈이다.
◇솔리다임 인수가 'ESG'와 어떤 관련?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말 1차 클로징(잔금 납입 완료)한 인텔 낸드사업부(솔리다임으로 사명 변경) 딜은 반도체 M&A가 시장점유율 등을 최대 목표로 하는 통상의 딜과는 특징이 다를 수 있단 점을 잘 보여준다.
이번 M&A로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낸드 시장점유율 2위(20%)로 올라서게 됐고 시장이 인수 성과로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당장 낸드 시장경쟁력이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만 주안점을 두고 M&A를 단행한 건 아니다. 인수 때부터 인텔 낸드사업부는 적자였다. 이런 기업을 인수한다면 매출에는 기여해도 수익성 개선에는 오히려 마이너스다. 그럼에도 수조원을 들여 적자사업부를 인수한 데는 더 큰 그림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 역량을 키우는데 인텔의 자산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세대 메모리의 경쟁력은 전력이 덜 소모되는 반도체를 누가,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에 달렸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전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빅테크(정보 기술 대기업)들은 저전력 반도체를 꾸준히 구매할 수밖에 없다. 낸드가 대량으로 들어가는 게 클라우드 서버인데,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그래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보관하는 서버용 PC를 가동하고 PC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중앙처리장치(CPU)가 연산을 하려면 D램과 S램, 낸드 등 메모리에 저장된 데이터를 가져와야 한다. 특히 딥러닝과 빅데이터의 경우 데이터가 워낙 많다 보니 D램과 S램 외에 낸드에서 데이터를 가져다 쓰는 케이스가 많이 발생한다. 이때 낸드에서 일정 부분 연산을 해줄 수 있다면 '분산효과'가 생겨 열과 전기가 덜 소모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낸드 생산 선도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웨스턴디지털 모두 CPU를 만든 경험이 없지만 인텔은 CPU 강자"라며 "연산할 수 있는 낸드를 만들기 위한 '키'가 여기에 있다. 인텔의 낸드팀은 인텔 CPU팀과 협업해왔기 때문에 연산에 대한 개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텔의 낸드 연구·개발(R&D) 인력을 데려오면 데이터센터에 적합한 미래형에 적합한 연산 가능한 낸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SK하이닉스가 이 딜을 추진할 때 포커스였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시장점유율 상승을 노린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큰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는 관점이 M&A에서 모티베이션이 됐다는 설명이다.
◇키옥시아 투자가 말해주는 것
SK하이닉스의 일본 낸드 기업 키옥시아 딜도 국내 반도체 M&A 역사상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원래 키옥시아 인수를 원했으나 일본은 자국 대표기업을 한국에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경영권을 제한하는 딜 구조로 매각 측을 설득했다. 주요 경쟁당국의 반독점 심사도 통과했다.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키옥시아 투자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형태였다.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일본계 기업과 애플, 서버업체 델, 하드디스크업체 시게이트, 반도체 기업 킹스턴 등이 함께 참여한 '한미일' 컨소시엄을 설계했다. 총 투자규모는 약 4조원이었다.
업계 일각에선 SK하이닉스가 수조원을 투입하고도 경영권을 가질 수 없어 실익이 별로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키옥시아가 상장하면 재무적 투자자(FI)로서 큰 투자차익을 챙길 것으로 점쳐질뿐더러 전략적 가치도 충분히 있는 딜이라는 평가도 많다.
당시 딜에 관여한 한 임원은 이어 "당시 SK하이닉스는 선제적으로 전략적 투자자(SI) 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한 대신 나중에 매각할 때 SK가 원치 않는 경쟁자에 파는 데 대해선 비토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못 가져도 나중에 경쟁사에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키옥시아가 웨스턴디지털이나 마이크론, 중화권 경쟁사로 넘어가는 상황을 막았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고 충분히 실익을 챙겼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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