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M&A 전략을 묻다]하만 이후 멈춘 딜, 삼성전자의 고민⑤'2030년 비메모리 1등' 달성이 최우선…"129조도 적다" 돈 나갈 곳 '산적'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10 12:37:36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8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M&A는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가 풀지 못한 경영 숙제다. 2016년 미국 오디오·전자장비 기업 하만(Harman) 인수 이후 '빅딜'은 없었으나 M&A로 새 성장엔진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됐다.이런 가운데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이 "M&A를 추진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데다 최근 이재용 회장 취임이란 이벤트가 있었던 만큼 멈췄던 M&A가 탄력을 받을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딜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나 반도체 밸류체인 내 협력사에 투자하거나 해외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규모가 작은 딜만 성사됐다. 하만 인수 이후 볼트온(유관 기업 인수)이나,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딜에 대한 필요성이 시장에서 제기됐으나, 그동안 삼성전자의 M&A 전략은 '정중동' 기조였다. 그 이유는 뭘까.
결론적으로 삼성전자가 머뭇거리는 사이 반도체 시장 주요 기업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 비메모리와 메모리 구분할 것 없이 '쩐의전쟁'도 더 치열해져 증설 경쟁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아무리 100조원이 넘는 현금을 갖고 있어도 M&A에만 매달릴 수 없는 셈이다.
◇시스템 반도체 전략에 유효한 M&A
삼성전자는 M&A를 성장 엔진으로 활용한 경험이 많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 위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산업에선 번 돈으로 공장 짓는 식의 '오가닉 그로스(organic growth)'이 유효했으며, 시장 구도상 동종업계 기업 간 M&A가 큰 의미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상적인 M&A의 목적은 기업을 인수해 간판을 바꿔 달고 시장점유율 상승의 효과를 누리는 데 있다. 하지만 메모리 시장에선 이런 식의 합병이 전략적으로 꼭 유리하지는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같은 메모리 기업이라도 공정 기술과 사용하는 소재, 부품이 다르다"며 "인수하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새로 다 짓는 거랑 다름없는데 인수 시엔 경영권 프리미엄도 매도자에 줘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확실한 모티베이션이 있는 게 아니고 증설 효과를 노리고 경쟁사를 인수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차라리 증설로 자체적으로 생산능력을 키워 경쟁사를 압도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반면, 비메모리 쪽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일단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범위가 워낙 넓은 데다 기업들 간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다. M&A와 투자 등을 통해 단숨에 역량을 끌어올리는 '인오가닉 그로스(Inorganic growth)' 전략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경쟁력 강화에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2016년 이후 인수·투자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메모리 분야에선 생산 밸류체인 내 협력사에 투자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선 영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그래프코어(Graphcore)나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헝가리 에이아이모티브(AImotive) 등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에 투자한 사례가 눈에 띈다.
삼성 계열사들의 출자금을 기반으로 한 삼성벤처투자와 삼성전자 투자자회사 삼성넥스트를 통해서도 해외 기업 인수·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각 딜의 규모가 크진 않다.
◇파운드리 전쟁에 주력…현금 여력 충분치 않아
M&A는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데 유효한 전략이나 여력이 충분하진 않다. 대외적 여건도 따라주지 않고 투자할 곳이 워낙 많단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곳간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테마는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다. 핵심은 세계 1위 파운드리 대만 TSMC가 굳건하게 버티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격차를 좁혀가는 것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시장점유율은 TSMC 53.4%, 삼성전자 16.5%로 1, 2위 격차가 상당하다. 시장점유율을 키우려면 생산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금 투자 규모만 놓고 비교해보면 앞으로도 TSMC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파운드리만 하는 TSMC의 올해 1년 캐펙스(CAPEX, 설비투자액) 목표액은 360억달러(약 51조원)다.
삼성전자가 한 해 비메모리 쪽에 쓰는 캐펙스가 10조원이 채 안 된다. TSMC가 투자규모를 더 늘린다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그만큼 돈을 더 써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메모리 쪽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삼성전자는 평택과 기흥, 화성, 온양 등 국내 공장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에도 반도체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이들 공장의 기본적인 시설 유지·보수, 업그레이드만 하더라도 상당한 자금이 들어간다.
삼성전자가 3분기 현재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약 129조원이다. 그러나 보유 현금이 100조원이 넘어도 다 M&A에 쓸 수가 없다. 기업마다 기본적으로 사업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삼성전자 전체 종속기업의 90%가 해외자회사라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 규모만 추리면 수십조원으로 떨어진다. 또 메모리·비메모리 모두 경쟁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어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현금이 얼마나 들어갈지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몸값은 수십조원이 넘는다. 한때 삼성전자가 인수를 타진했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는 현재 인수가가 60조원 정도로 거론된다.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고 본사 단독으로 매입대금을 마련하기엔 자금융통에 부담이 있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NXP 같은 큰 글로벌 기업을 M&A를 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소재·부품·장비 관련해 기술 있는 회사를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게 현실적"이라면서도 "다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엔 기회도 많지 않아 삼성전자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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