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0월 12일 14:46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차전지는 고전적인 원통형에서 각형, 파우치형 순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변태(變態)'를 기술의 진화라 하기에는 폼팩터(외형)마다 장단이 엇갈린다. 가장 나중에 등장한 파우치형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동차회사들이 각기 다른 폼팩터를 택하는 것 역시 그때문이다. 사업철학에 따라 다른 형태를 고집하니 향후 판도를 확언하기 섣부르다. 배터리업체들로선 어느 폼팩터가 주류로 설 지에 따라 희비가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기업별 포트폴리오 전략도 갈림길에 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 파우치형 듀얼 체제를 가져가면서 CTP 등 팩 설계기술 적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원통형과 각형을 양산 중인 삼성SDI는 기존 라인을 크게 키우기보다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베팅하는 모양새다. 후발주자 SK온의 경우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원통형 시장을 버리고 파우치형으로 직행,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

◇되살아난 원통형 전지, LG엔솔·삼성SDI 대응 분주

배터리 기술은 소재와 구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소재 측면에서는 양극재가 시장을 이끌어왔으며 양극재는 국내업체들의 주력인 삼원계 NCM(니켈, 코발트, 망간)배터리, 중국업체들의 주력인 LFP(인산철리튬)배터리가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조 기술의 경우 다시 두 갈래로 분류된다. 셀의 폼팩터, 그리고 CTP(셀투팩)나 CTC(셀투섀시) 등 팩의 구조형태다. 폼팩터는 원통형과 각형, 파우치형이 있는데 가장 초기 형태 배터리인 원통형은 공정이 단순하고 쉬워 원가 부담이 낮다. 그러나 원통이라는 모양 특성상 셀 사이에 필연적으로 빈틈이 생긴다.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각형은 단단한 금속 캔 안에 배터리원료를 보관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강하지만 그만큼 비싸고 무겁기도 하다. 파우치형은 케이스가 플라스틱 재질이라 변형이 쉽고 빈 공간이 없어 에너지 밀도가 촘촘하다. 다만 두께가 얇다 보니 충격에 약하며 공정이 복잡해 생산비용도 많이 든다.


이중 원통형 전지는 애초 시장에서 외면받는 추세였다. SNE리서치가 조사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폼팩터별 점유율을 보면 원통형은 2018년 29%, 2020년 23%로 점차 하락했고 올 1분기에는 15.6%로 더 떨어졌다. 같은 시기 각형은 63.6%, 파우치형은 20.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을 뒤집은 게 ‘전기차 공룡’ 테슬라다. 테슬라는 4680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Y'를 올해 양산한다고 작년 말 선언했다. 지름 46㎜, 길이 80㎜를 뜻하는 4680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 5배, 출력 6배, 주행거리를 16% 개선해 기존의 약점을 극복했다. 덕분에 다시 원통형 폼팩터가 빠르게 득세 중이다.

테슬라를 필두로 BMW, 볼보, 재규어 등 전통 완성차 업체들도 원통형 채택을 늘리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서둘러 대응에 들어간 상태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은 7300억원을 들여 원통형 생산라인의 추가 구축에 나섰고, 증설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삼성SDI 역시 지름 46㎜의 원통형 공장 증설에 1조7000억원 지출을 결정했다.


◇삼성SDI, '꿈의 배터리' 선점할까

다만 이번 투자를 감안하더라도 삼성SDI는 경쟁사들보다 비교적 돈주머니 풀기에 인색한 편이다.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의 이동통로인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꾼 것을 말한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지만 단기간 내 상용화가 쉽지 않다.

국내 배터리 3사의 경우 삼성SDI가 2027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각각 2030년에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밝히고 있다. 삼성SDI가 나머지보다 3년이나 빠르다. 때문에 업계서는 ‘그게 과연 가능하겠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개발 자체가 어려울 뿐더러 시험생산을 하려 해도 샘플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나 느려다. 그러나 삼성SDI는 가장 기술력이 앞서 있는 만큼 시간은 충분하다는 입징이다.

삼성SDI가 전고체 배터리에 판돈을 집중한 데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많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고체 전지는 에너지밀도가 높을 뿐 아니라 폭발이나 화재의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케이스를 봐도 작년 3분기에 3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리콜 관련 충당금으로 6200억원을 설정한 탓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납품량이 많은 만큼 삼성SDI나 SK온보다 리콜이 잦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현대차의 코나EV, GM의 쉐보레와 볼트EV발로 대규모 리콜이 진행된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갤럭시 S7 폭발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삼성그룹 내부에서 배터리 화재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며 “혹여 화재로 리콜 사태가 생겨 벌어들인 수익을 깎아먹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우치형' 원트랙 SK온, 낮은 판가로 시장 침투

원통형 폼팩터 증설에 나선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와 달리 SK온의 경우 파우치형 단일 폼팩터만 갖춘 상태다. 가장 기본적 폼팩터인 원통형을 건너뛰고 파우치형으로 넘어간 업체는 세계에서 SK온이 유일하다.

이제와서 원통형 시장의 터줏대감들과 다퉈봤자 출혈이 더 클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원통형 전지는 생산 속도가 빨라 불량이 많은 만큼 경험이 많을수록 더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우치형 전지에만 집중해도 아직 수요를 따라가기 힘겨운 측면도 있다. SK온이 적자를 불사하고 인력과 생산설비에 공격적 투자를 하고 있지만 생산물량이 아직 부족한 상태로 전해졌다.

다만 단일 폼팩터 포트폴리오를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연내 각형 전지에 진출해 파일럿 생산라인을 가동키로 했다.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이 2030년까지 각형 배터리 비율을 80%로 높이겠다고 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SK온은 다소 낮은 판가를 감수하면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SNE리서치가 kWh당 배터리팩 판가를 추산해 보니 삼성SDI가 183$/kWh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이 회사의 ‘수익성 우위’ 전략과 일치하는 결과다. 그 뒤로 LG에너지솔루션이 150$/kWh(5위)였고 SK온은 119$/kWh(9위)로 낮았다.

업계 관계자는 “SK온이 후발주자로 뛰어든 만큼 초기 점유율 경쟁을 위해선 가격적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우선 완성차회사와 공급계약을 맺고 관계를 형성한 이후에 차츰 가격 협상을 통해 판가를 올리는 전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