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품질비용 진단]충당금 규모와 반영 시기에 담긴 경영전략②2020년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시장 흐름 못읽어..한해 농사 윤곽 나오는 3분기에 발표
조은아 기자공개 2022-11-08 07:33:08
[편집자주]
'품질비용 반영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부터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실적 발표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2018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8조원에 가까운 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했다. 세타2 엔진과 관련한 품질비용 반영은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의선 회장의 품질경영 기조 아래 앞으로도 품질비용을 대규모 반영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관측이다. 더벨이 현대차그룹의 품질비용 현황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1일 17:18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0년 현대차와 기아는 전년의 3배가 넘는 3조3600억원의 충당금을 한 번에 실적에 반영하면서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품질비용 발생으로 염려를 끼쳐 주주들에게 매우 송구하다"며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보수적으로 향후 품질비용을 반영했다"고 말했다.현대차와 기아는 정말 품질비용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2020년 처음 3조원대 충당금을 설정했을 땐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무려 3조원을 추가하면서 보수적으로 반영했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게 됐다.
현대차와 기아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동차회사들은 리콜비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비용인 판매보증충당부채를 잡는 기준 역시 회사 내부 방침에 따라 모두 다르다. 특히 IFRS가 준용하는 '원칙중심' 회계에선 회계 관련자들의 판단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보고 있다. 충당금의 규모와 반영 시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의 재량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앞서 현대차와 기아는 2020년 3조3600억원의 충당금을 설정할 때 차량 잔존기간과 관련한 가정을 기존 12.6년에서 19.5년으로 늘리고 세타2 엔진이 아닌 다른 엔진으로도 품질강화 조치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차량이 출시된 뒤 20년 가까이 유지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또 리콜대상이 아닌 엔진까지 선제적으로 품질비용을 반영했던 만큼 보수적으로 반영했다는 현대차그룹의 설명은 맞아 보인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어차피 발생할 품질비용이라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실제 품질비용이 그만큼 발생하지 않으면 충당금이 환입되는 효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불과 2년 만에 기존 3조3600억원에 2조9000억원을 추가 반영했다는 건 그만큼 시장과 소비자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회계처리는 차변과 대변에 어느 계정을, 얼마로, 언제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대차와 기아의 충당금 역시 마찬가지다. 판매보증충당부채의 경우 애프터서비스(AS)인 만큼 정확한 금액을 추정하는 건 어렵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경험률이다. 과거 일정기간에 매출 대비 보증 수리 비용의 경험률에 근거해 금액을 추산하게 된다. 영업환경이 급격히 변경되지 않는 이상 과거의 보증 수리 청구 추세가 미래에도 비슷한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2019년 처음 선보인 평생보증 프로그램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9년 2010~2019년 출시된 세타 2 GDi, 세타 2 터보 엔진을 단 차량을 대상으로 평생보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당 차량은 국내 52만대, 미국 417만대를 더해 모두 469만대다.
이전까지는 차량의 보증 수리 기간이 5년 혹은 10년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충당금 추정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보증 수리 기간의 제한이 사라지면서 기존 차량 운전자들이 차량을 더 오래 보유하는 등의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났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이번에 추가 충당금 설정을 발표하며 "전례 없는 평생보증 정책을 실행 중이었으며 이에 대한 비용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경험치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반영 시기 역시 내부에서 고민을 거듭해 조율한 결과물이다. 세타2 엔진에 대한 대규모 충당금은 매년 3분기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발표는 3분기 실적 발표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이뤄진다. 3분기가 지나면 한 해 농사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는 만큼 충당금에 따른 실적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3분기를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020년의 경우 정의선 회장의 공식 취임에 맞춰 품질경영 기조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여겨졌다. 올해는 3분기 현대차와 기아 모두 역대급 실적이 예고됐던 만큼 충당금을 반영하고도 흑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충당금을 반영해도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조5518억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하는 데 그쳤다. 기아의 영업이익은 7682억원으로 전년 대비 42.1%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상당한 규모의 흑자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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