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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하이닉스가 참전한다면…ARM 딜 시나리오 [반도체 M&A 전략을 묻다]③프리IPO 참여해 사실상 공동인수 가능성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08 13:39:02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4일 14: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은 최대주주가 매각 의사를 밝힌 만큼 주주 구성이 한번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시도하는 시점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ARM 주주로 등극할 기회이기도 하다.

ARM M&A는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엔비디아가 인수를 시도했다가 반독점 심사에 막혀 불발됐던 만큼 어느 한 기업의 단독 인수는 어렵다는 점이 판명됐다. 소프트뱅크로서는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 컨소시엄에 재매각을 시도하거나 기업공개(IPO)를 노릴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딜 향방은 어떻게 흘러갈까.

일단 소프트뱅크가 상장을 타진하면서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형태의 딜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RM 지분 확보에 나설 경우 펼쳐질 수 있는 시나리오는 뭐가 있을까.

◇재매각 시나리오가 부활한다면

ARM 공동인수설은 올해 초 인텔에 이어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 구성·참여 의지를 직접 거론하며 불이 붙었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여러 반도체 기업들의 연합체에 매각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인텔, 애플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 간 컨소시엄 구성이 합의가 된다고 해도, 누가 리드 투자자가 될지, 지분은 어떻게 나눠가질지 등에 대한 이해관계를 조율해 주주간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 있다. 공동인수가 곧 기업결합심사 '프리패스'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한 대형 로펌 M&A 전문 변호사는 "독점만 아니라 과점도 문제"라며 "삼성전자와 인텔 등 시장 선도 업체들이 같이 산다고 하면 탄탄한 2등이 없어질 수 있는 거라 단독인수 보다 사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M&A 전문 변호사도 "같은 공급 사슬에 있는 업체 간 '수직적 결합'은 경쟁 제한성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자동차 기업이 ARM을 인수한다고 가정하면, 다른 자동차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와 완전히 무관한 기업이 인수자로 나서면 좋지만 대규모 자금을 들여 인수하기엔 시너지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단 점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ARM 주요 고객사(ARM 홈페이지)

◇프리IPO 가능성은

매각은 불확실성이 큰 만큼 소프트뱅크는 일단 IPO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IPO 전문가로 꼽히는 제이슨 차일드(Jason Child)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하며 IPO 의지를 내비쳤다.

문제는 소프트뱅크의 지분 전량 엑시트가 예고된 터라 시장에서 IPO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밖에 없단 점이다. ARM 상장 이후엔 주인 없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IPO를 추진하려면 프리IPO를 통해 SI를 유치하는 등의 대안을 꼭 만들어놔야 한다. 투자하겠다는 SI만 확보된다면 소프트뱅크는 프리IPO 구주 거래로 보유 지분율을 낮추고 상장 이후 완전히 엑시트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프리IPO 투자자들이 소프트뱅크가 완전히 지분을 턴 이후에도 오랜 기간 남아서 회사를 경영할 것이냐에 대한 시장의 의문을 해소해줄 만큼 탄탄하고 신뢰를 줄만한 곳이어야 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인텔, SK하이닉스 등의 프리IPO 참여는)이 회사들이 상장 후에도 계속 주주로 남을 거고 시너지를 계속 낼 거란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프리IPO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등 SI만 아니라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등 FI도 참여할 수 있다. ARM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거론되는 대로 최대 100조원까지 책정된다면 아무리 글로벌 기업들이라고 해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FI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소프트뱅크는 ARM의 뉴욕거래소 상장을 추진 중이다.(사진 출처=www.nyse.com)

◇딜 구조 어떻게 설계하나

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프리IPO에 참여한다면 지분은 어느 정도 확보할까. 앞선 관계자는 "5%~10% 사이가 적당할 것"이라며 "ARM IP를 자사 공정에 맞춰줄 수 있을 정도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가져가면서 경영권이 없더라도 일정 부분 참여할 권리를 확보하려면 5% 이상은 가져와야 한다. 다만 무리하게 돈을 투입해 10% 이상 지분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A 전문변호사는 "여러 SI가 컨소시엄 형태로 프리IPO에 참여한다면 어느 한 쪽으로 지분이 치우치는 걸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말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추진하기) 쉽지 않다"며 "다만 안 될 이유는 없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지분율을 각각 유의미한 수준으로 거의 비슷하게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리IPO는 IPO 임박해서 하는 경우도 있고 상장 시점을 1~2년 이후로 잠정적으로 정해두고 진행할 수도 있다. 당장 글로벌 경기침체로 상장 추진이 어렵다면 시간을 두고 SI, FI들과 프리IPO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프리IPO 딜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많다. 소프트뱅크가 경영권 지분 전체를 매각하는 것은 예고됐으니 투자자들이 이와 관련된 권리를 요구하는 게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우선 상장 이후 1대 주주 누가되느냐를 두고 컨소시엄 간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중요한 건 콜옵션(우선매수권)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우선매수권을 두세 군데가 가져가는 것도 이론적·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상장 이후 소프트뱅크가 제3자에 지분을 넘기거나 장내매각하지 않도록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다. 우선매수권을 가진 프리IPO 투자자는 상장 이후 소프트뱅크의 잔여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투자자들은 또 상장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풋옵션(일정 가격에 지분을 되팔 권리)을 요구해야 한다. SI-FI 컨소시엄이 구성된다면 FI는 태그얼롱(동반매도권)을 가져 추후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SI들에 팔 때 같이 넘기도록 미리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선 변호사는 "엑시트하고 싶은 소프트뱅크와 지분을 사고 싶은 쪽, 당장은 못 사지만 옵션을 갖고 싶은 투자자 간 니즈를 맞추는 식으로 딜이 돌아갈 것"이라며 "프리IPO 참여를 통한 공동 인수형태가 되든, 소프트뱅크가 컨소시엄에 재매각하든, 어떤 형태든 진행된다면 M&A 역사에 남을 만한 딜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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