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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외화채 콜옵션 논란]흥국생명의 번복인가, 정부의 번복인가콜옵션 미행사 '합리적 선택' 평가...파장 커지자 서둘러 진화

안준호 기자공개 2022-11-10 07:21:51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9일 08: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물 시장을 뒤흔든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배경에는 총 3번의 '번복' 과정이 있었다. 2번에 걸쳐 말을 바꾼 흥국생명은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도 사태로 인한 후폭풍이 커지자 입장을 바꿨다. 애초부터 당국이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면 시장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흥국생명의 '변심'...'합리적 선택'으로 본 금융당국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날 예정된 5억 달러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달 초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한 뒤 한국물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심이 극도로 악화되자 애초 내렸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흥국생명의 '변심'은 처음이 아니다. 흥국생명은 지난 9월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로드쇼에서 이미 2017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상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지난달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준비도 진행해 왔다.

흥국생명의 번복에는 이해가 가는 구석도 있다. 금리인상으로 보유 채권 가격이 하락하며 흥국생명의 RBC(지급여력) 비율은 상반기 기준 157.9%로 내려갔다. 당국의 권고 기준인 150%에 근접한 수준이다. 차환 없이 이번 콜옵션을 행사했다면 RBC 비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발행 환경은 어느 때보다 가혹했다. 흥국생명 역시 상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북빌딩을 계획했으나 한국물 시장 투심이 급속도로 침체되며 발행 일정을 포기했다. RBC 비율을 유지한 채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선 대주주인 태광그룹의 자금 수혈 이외엔 해결 방안이 없었다.

금융당국의 입장도 사태 발생 이전과 이후 정반대로 바뀌었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거나 상환하려면 보험업법 감독규정에 따라 금융감독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한국물 특성상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도 필수적이다. 흥국생명 역시 차환을 위한 원화 후순위채와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준비하면서 당국과 소통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관점에 따라서는 금융당국이 콜옵션 미행사에 동의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실제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가 '가능한 선택지'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 2일 금융위와 금감원, 기재부 등은 보도자료를 통해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콜옵션 행사 권한은 어디까지나 회사에 있으며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콜옵션 미행사를) 외부에서 어떻게 보는지 감안해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생각 못 한 것 같다"면서 "관행이 깨진다는 것에 대해선 여러 입장이 있다. 필요하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장 커지자 적극 대응으로 선회

영구채 성격의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 행사를 전제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행사가 연기되면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나서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에 사실상 동의하는 입장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흥국생명을 비롯한 금융사의 외화채 가격이 급락한 것은 물론, 일부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물 매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상황이 초래됐다.

정작 파장이 커진 뒤엔 금융당국의 입장도 달라졌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조기 상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점과 흥국생명 측의 자금 여력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시 준비 중이던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계획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감독기관이 민간 금융사의 경영 판단에 개입하기 힘든 것이 요즘 분위기"라며 "RBC 비율을 한시적으로 유예해줬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몇몇 회사를 위한 예외 사례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관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같은 입장 번복에 대해 업계에서는 아쉬운 대처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전 협의 과정이 있던 만큼 금융당국이 상환 방안을 독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효기간이 몇 달 남지 않은 RBC 비율이 사태를 키웠다면 사전에 이를 예상하고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은행 콜옵션 미상환 사태라는 선례를 생각하면 이번 일이 시장에 미칠 여파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콜옵션 포기를 지켜만 보다 뒤늦게 입장을 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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