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외화채 콜옵션 논란]조건부자본증권 콜옵션, '의무 vs 권리’명목은 콜옵션, 사실은 풋옵션... 한국물 파장 미치는 '암묵적 룰'
최윤신 기자공개 2022-11-10 12:47:42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9일 08: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사태는 조건부자본증권에 딸린 콜옵션 행사 의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명목상 발행사의 ‘권리’인데, 자본시장에서 사실상 ‘의무’인 콜옵션에 대한 논란이 우리은행 사태 이후 13년만에 다시 달아올랐다.결국 흥국생명이 콜옵션 행사 기일을 앞두고 행사를 선언하며 이번에도 ‘콜옵션은 의무’라는 명제가 다시 한번 힘을 얻었다. 다만 업계에선 앞으로 콜옵션 미행사 사례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 발행사엔 '자본성 부여', 투자자엔 '금리 메리트' 위한 콜옵션
앞서 흥국생명이 지난 1일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자본시장엔 논란이 일었다. IB업계에선 주로 “시장의 신뢰를 깨뜨린 일”이라고 평가한 반면, 시장 일각에선 “콜옵션은 권리이지 의무는 아니다”라며 맞섰다.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한 것은 조건부자본증권 콜옵션의 명목상 의미와 실제 통용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신종자본증권을 비롯한 조건부자본증권에 달린 콜옵션은 사전적으론 발행사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사실상의 ‘만기’로 인식해왔다.
조건부자본증권 콜옵션에 명목상 의미와 실재적 의미가 차이나는 건 조건부자본증권 자체가 발행사와 투자자가 윈-윈 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계된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발행사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할 수 있어 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고, 투자자는 회사채에 비해 높은 금리를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채권이 자본성을 갖기 위해서는 변제 순위를 늦추고 듀레이션을 길게 설정해야 한다. 특히 기본자본(Tier1)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만기가 없는 ‘영구채’여야 한다. 흥국생명이 이번에 조기상환을 결정한 신종자본증권도 만기가 30년으로 명시됐지만 ‘만기 연장에 대한 권리를 전적으로 발행사가 보유한다’는 조항에 따라 기본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만기가 없는 채권의 수요를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을 넣을 경우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콜옵션이 ‘암묵적으로’ 풋옵션 역할을 하는 기형적 구조로 존재하게 된 이유다. 투자자들은 후순위와 콜옵션 미행사 등에 대한 리스크를 안는 대신, 채권에 비해 높은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선언은 조건부자본증권 존재의 근간이 되는 ‘암묵적 룰’을 어겼다는 점에서 시장의 신뢰를 깨뜨린 행위라는 게 시장의 주된 시각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투자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단 우려가 커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4일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로 한국 보험사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발행사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도 이런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다.
국내 주요 외화채 발행사 고위 관계자는 “조건부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가 시장과의 약속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강제성에서 회사채와 구분되기 때문에 차환이 어려운 상황에선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콜옵션 행사를 조금이라도 미룰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조건부자본증권에 금리재산정과 스텝업 등 투자자 안전장치가 붙는 건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콜옵션은 의무’ 다시 한 번 입증
흥국생명은 결국 콜옵션 행사를 선택했다. 시장에선 흥국생명이 실리를 따졌을 때 미행사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결국 예정된 첫 콜옵션 행사일에 ‘상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흥국생명이 앞으로 외화채를 발행할 생각이 없다면, 평판 저하를 감수하고 콜옵션 미행사를 선택하는 게 실리적으로 유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물 시장의 파장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흥국생명 측은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선 조건부자본증권 차환이 쉽지않은 환경인 만큼, 콜옵션 미행사 사례가 다시금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흥국생명 사태가 당초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파장이 커진 측면이 있는 만큼, 투자자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시장에 큰 충격이 없이 연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란 게 증권업계 일각의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도이체방크 등 해외 금융기관도 차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콜옵션을 무리해 행사하기보다는 미루는 선택을 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며 “투자자와의 충분한 소통을 전제로 한다면 한국물에 큰 파장 없이 콜옵션을 일부 늦추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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