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긴급 점검]현금 부자가 어쩌다 '급전' 필요해졌나②시황 악화에 메마른 현금흐름, 일진 몸값 부담 실감
박기수 기자공개 2022-11-23 14:44:29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8일 14시0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설상가상. 롯데케미칼의 현 모습이다. 몇 년 만에 작심해 빅딜에 나섰는데 하필 그때 화학업계 불황이 닥쳤다. 예상치 못한 금리 인상 속도에 최상위 크레딧 등급을 보유하고도 차입이 망설여지게 됐다. 여기에 자회사 롯데건설이 유동성 문제에 빠지면서 수천억원을 수혈해주기까지 했다.안정적 재무구조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롯데케미칼이 유상증자 카드를 만지작거릴 만큼 '급전'이 필요해진 배경들이다. 크레딧 전망도 하락했다. 여러모로 롯데케미칼에 싱숭생숭한 연말이다.
◇FCF -1조원, 순차입금 9개월 만에 2조원↑
글로벌 시황에 따라 실적이 요동친다는 평가를 받아온 롯데케미칼은 아직도 이 체질을 개선해내지 못했다. 2010년대 말 초호황기의 도래로 연간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뽑아내던 때와 비교하면 올해는 180도 바뀐 모습이다. 글로벌 긴축기조와 더불어 공급과잉이 심화하면서 범용 제품들은 올해 내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누적 별도 영업손실로 2989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이맘때 1조원가량을 영업이익으로 냈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얼마나 달라진 지 체감할 수 있다.
영업으로 돈을 못 버니 현금흐름도 말라가고 있다. 별도 3분기 누적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772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798억원)의 약 5.6%에 불과하다. 772억원은 각종 이자비용과 법인세(1071억원)를 내기에도 부족한 수준이다. 여기에 자본적지출(CAPEX)과 배당 지급을 하고 나면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조481억원이 나온다.
다만 보유 현금성자산은 작년 말과 큰 변화가 없다. 작년 말 별도 기준 현금성자산은 2조6123억원이다. 올해 3분기 말은 2조2548억원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지 않았다. 영업으로 돈을 못벌었는데 현금 수준이 그대로라면 정답은 차입에 있다. 차입 규모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작년 말까지 롯데케미칼은 별도 기준으로 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은 순현금 상태였다. 작년 말 총차입금 2조5458억원을 보유해 순차입금이 -665억원을 기록했다. 순차입금 수치는 9개월이 지난 올해 3분기 말 2조1757억원을 기록했다. 차입금이 2조5458억원에서 4조4306억원까지 불어난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말 이후 기업어음(CP) 3000억원 발행을 비롯해 국민은행 등에서 원화차입금 3000억원을 일으켰다. 장기차입처였던 미즈호은행에서도 차입 잔액을 1902억원에서 4302억원으로 늘렸다. 공모채도 1조원 발행했다.
물론 지표 상으로는 재무구조가 훼손됐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3분기 말 기준 별도 부채비율은 51.7%, 차입금의존도는 23.9%다. 다만 일진머티리얼즈 딜과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 등 여러 자금 유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롯데케미칼이 마주한 부담이 상당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진 '2.7조원+@'의 압박…KCFT 샀다면
시황 불황이든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이든 이것만 없었다면 유상증자 카드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박 업체 일진머티리얼즈 M&A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 등을 인수하는데 총 2조7000억원을 들이기로 했다.
화학 동종업계 '맞수'로 꼽히는 LG와 SK가 배터리 사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던 2010년대 후반부터 롯데케미칼 역시 신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거셌다. M&A로 큰 성장을 이룬 기업인 만큼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큰 M&A를 성사하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신중했다.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사업, 수소 사업 등 대규모로 돈을 쓰겠다는 청사진만 내놨을 뿐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쇼와덴코 지분 인수, 롯데정밀화학의 솔루스첨단소재 지분 인수가 있었지만 이는 대세를 바꿀 수 있는 '혁신'은 아니었다. 일본 화학회사 JSR 엘라스토머 사업부 인수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그러는 와중에 SKC는 2020년 초 글로벌 선두권 동박 제조사인 KCFT(현 SK넥실리스) 지분 100%를 1조1900억원에 인수했다. 화학사업에 포트폴리오가 치중돼있다는 점은 롯데케미칼과 비슷했지만 떠오르는 사업에 빠르게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은 롯데와 달랐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지분 53.3%를 KCFT 지분 100% 값의 두 배 이상으로 지불하고 사는 롯데케미칼을 두고 업계의 평가는 갈린다.
한 대기업 전략기획팀 관계자는 "전략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물이 나왔을 때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해 이번 딜의 필요성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인 것도 맞으나 추후 추가 투자를 위한 자금 유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비싼 값을 주고 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특유의 의사결정 과정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뒤처진다는 평가도 있다. 시장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위계질서가 강하게 확립된 곳으로 빅딜을 위해서는 사장단 회의의 동의를 얻고 신동빈 회장의 재가가 필요해 상당 시일이 소요된다"라면서 "소재 사업 진출이라는 결정이 2~3년만 빨랐어도 KCFT 인수를 위해 SK와 경쟁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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