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2월 07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동성 잔치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동안 지속된 혼돈의 끝에서 이제 돈의 배신이 본격화되고 있다.일례로 풍부한 유동성으로 주식 시장의 호황이 지속되던 지난해 상장사 특히 코스닥 상장사들은 제로 금리의 전환사채(CB)를 찍어 내며 손쉽게 자금을 조달했다. 이자 부담 없이 돈을 조달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가 없었다.
하지만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보통주로 전환되지 않은 CB는 그대로 부채로 남았고 늘어나는 조기상환청구권 행사에 상환자금 마련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는 스타트업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는 말처럼 유동성이 넘치던 지난 1~2년간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사업 아이템 하나만으로 하루 아침에 기업가치 1조원을 바라보는 스타트업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유동성 잔치가 끝나자마자 몰락으로 돌아섰다. 1조원의 기업가치는 하루 아침에 반토막, 심지어 10분의 1 토막으로 떨어지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코로나19 속에서 급속하게 사세를 불려가던 배달대행업체 '부릉'을 운영하는 물류기업 메쉬코리아다.
연초만 해도 대규모 자금조달을 추진하던 메쉬코리아는 불과 1년도 안돼 법정관리행을 택했고 벤처캐피탈을 포함한 수많은 투자사들은 투자 원금 모두를 송두리째 날릴 위기다.
유동성이 말라버리면서 투자사들의 지갑이 닫혔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투자기준을 적용하니 기업가치 1조원을 바라보던 메쉬코리아는 세금 낼 돈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메쉬코리아처럼 몰락의 문턱에 선 스타트업들은 투자사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다. '비오는 날 우산 뺏기'라는 비판의 시선도 투자사들에게 쏟아진다.
성장의 동행자에서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모험자본 투자 선봉에 선 벤처캐피탈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벤처캐피탈에게는 LP 출자금을 운영해 수익을 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망가진 포트폴리오 기업의 사정만 생각한다면 이 또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배임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벤처캐피탈사들은 사정이 악화된 투자기업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및 사업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산업 자체가 외면받고 있는 바이오 스타트업에겐 사업을 중단하고 개점휴업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최악의 경우에 이르기 보다는 투자시장이 회복되는 2~3년간 생존을 목적으로 버티기에 나서라는 조언이다.
창업자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고 배신감조차 느끼게 하는 요구지만 벤처캐피탈사들 입장에선 이조차도 선의에서 나온 말이다.
투자한 곳이나 투자받은 곳 모두가 상처를 입는 지금에 상황에 대해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돈의 배신이지, 결코 사람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동성 잔치가 끝난 후 시작된 돈의 배신의 시대에 악역을 자처할 수 밖에 없는 벤처캐피탈업계의 자조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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