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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 기버가 될 것인가 테이커가 될 것인가 [thebell desk]

박상희 부장공개 2023-02-16 08:12:13

이 기사는 2023년 02월 15일 08: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원대한 꿈을 갖고 스타트업을 설립한 파운더가 있다. 생각보다 수익 창출은 쉽지 않았고 투자금이 곧 바닥 났다. 후속 투자를 유치해야 했지만 투자자들은 외면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처럼 파운더를 믿어준 한 모험자본 투자자를 만났다. 몇 년 후 그 스타트업은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투자자는 엑시트를 통해 잭팟을 터트렸다. 누가 더 고마워해야 할까.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릴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경향이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춥고 배고픈 시절에 파운더에게 손을 내밀어준 투자자가 은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파운더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한’ 대박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안겨줬으니 투자자가 파운더에게 더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계적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에 따르면 세상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테이커(taker), 내가 준 것과 받는 것을 동일하게 여기는 매처(matcher), 자신의 이익 못잖게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면서 베풀고 나눠주는 기버(giver) 유형 등이다.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은 직역 의미 그대로 '모험 자본'을 뜻한다. 위험부담은 상당히 크지만 성공하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속성을 갖는다. 여기에 천착하면 VC로 불리는 국내 수백개 창투사와 신기사 등은 스타트업에 투입한 자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는 테이커가 된다.

다만 한국 VC 역할은 민간 자본에 기대 성장해 온 미국과는 차이점이 있다. 벤처펀드 결성의 중요한 재원이 민간자본이 아니라 정부 모태펀드이기 때문이다. VC들이 스타트업의 성장 여정을 함께 하겠다며 파운더의 '든든한 동반자(코파일럿)'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주고 창의적이다 못해 다소 실험적일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을 복기하면 국내 VC는 기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더벨은 투자 혹한기 주요 하우스의 투자, 회수, 펀딩 전략 계획 등을 살펴보기 위해 최근 '2023 VC 로드맵' 기획을 진행했다. 15개 하우스 수장을 대상으로 릴레이 인터뷰를 다뤘다.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표현이 바로 ‘옥석 가리기’였다. 저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에 따라 수많은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에 급제동이 걸렸음은 물론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점을 서둘러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사업 비전보다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느냐가 팔로우온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만난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금리가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 증대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우선 흑자전환부터 하라는 투자자의 특명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VC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모태펀드를 비롯한 공적 운용자금은 하우스의 트랙 레코드를 중요시한다. 이는 민간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비중 있는 잣대 중의 하나는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느냐, 즉 수익률이다. 성과 측면에서 경쟁사에 뒤처지면 펀드 레이징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밑 빠진' 스타트업에 계속해서 물(자금)을 투입할 수만은 없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마라. 불경기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들의 대출금을 무자비하게 회수하는 금융권의 관행을 비판할 때 종종 인용된다. 스타트업 파운더와 모험자본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한 VC 대표는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스타트업 파운더의 전화를 받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기버가 될 것인가, 테이커가 될 것인가.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는 모험자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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