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interview]이준호 덕산그룹 회장 "기업 외풍 막는 건 '벤처정신' 뿐"'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 자서전 출간, 소부장 벤처 1세대 우여곡절 담아
울산=구혜린 기자공개 2023-02-28 08:18:12
이 기사는 2023년 02월 27일 08: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자꾸 찾으면 눈에 보이게 돼 있다. 그렇게 찾은 게 솔더볼(Solder Ball)인데 '과연 이게 얼마나 영원할까?', '시장 규모가 커질까?', '기술이 변화한 후에도 연속적으로 쓰일까?' 엄청나게 공부해야 했다. '좋다, 투자하자' 결론을 내린 후에도 혁신을 안 하면 안 됐다. 계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회사를 외부에서 인정해주고 외풍(外風)에 시달리지 않는다."24일 울산 덕산하이메탈 본사에서 만난 덕산그룹 창업주 이준호 회장(사진)의 말이다. 시가총액 총 1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덕산하이메탈,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를 일군 그가 강조한 건 첫째도 둘째도 벤처정신이다. 여기서 벤처정신은 거창한 말이 아닌 '발전하려는 노력'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 내내 '어드벤스드(advanced)'란 단어를 스무 차례 입에 올렸다.
그는 천상 사업가다. 울산 토박이인 이 회장의 사회생활 첫 출발은 현대정공이다. 10년 근속 끝에 '내 일'을 하고 싶어 사직서를 냈다. 퇴직 시점에 이 회장의 위치는 자재부장이었는데, 부하직원 몇백명을 거느린 당시 모두가 부러워하던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박차고 과감히 창업에 뛰어들었다. 훗날 벤처기업인 덕산하이메탈 창업의 주춧돌이 된 '덕산산업'의 시작이었다.
창업 초기는 초라했으나 이 회장이 맛본 기쁨은 남달랐다. 그는 "1톤 트럭 한 대를 사서 은행을 돌면서 돈을 빌려 몇명으로 덕산산업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됐는데, 하루아침에 화려한 자리를 뒤로 하고 초라한, 열악한 중소기업 창업자로 바뀌게 된 것"이라면서도 "내가 추구하는 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것이라는 희열을 느낄 정도로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불안이 시작됐다. 덕산산업은 현대정공에 부품을 납품하는 벤더사였다. 대기업에 종속된 지위론 언제까지고 존속할 수 없겠단 판단이 섰다. 이 회장은 이 종속관계를 타파할 만한 '무기', 곧 차별성을 지닌 기술을 찾는 데 주력했다. 이때의 불안이 '솔더볼'을 찾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PCB(인쇄회로기판)와 반도체 칩을 접합하는 소재인 솔더볼은 지금까지 덕산하이메탈 매출의 일등공신이다.
솔더볼을 먹거리로 한 벤처 창업 후엔 자금난에 허덕여야 했다. 덕산하이메탈 설립을 위해 이 회장이 투자한 금액은 총 15억원이다. 설비를 갖추는 데 5억원, 연구개발비에 5억원, 제조개발비에 5억원을 썼다. 다만 솔더볼을 경제성을 가진 아이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수년간의 연구개발이 필요했다. 그는 "울산대 실험실에서 연구개발 할 땐 괜찮았는데, 납품하려 보니 경제성이 없더라"며 "생산 원가를 다운시키고 실제 라인에서 이뤄지는 양산개발을 진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위기 돌파 창구는 당시 '벤처 붐'에 따른 지분투자였다. 이 회장은 "당시 15억원을 다 소진하고 막막했었는데, 시내 복덕방에서 전화가 와서 덕산하이메탈 지분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그 때 당시 액면가의 20배인 1만주로 현금 20억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게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삼성전자 샘플 납품에 성공하기까지 오랜 기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벤처정신은 대기업 솔더볼 납품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 변화에 발맞춰 솔더볼을 혁신해야 했다. 그는 "경제성을 띤 솔더볼을 개발하고 나니 납이 없는 솔더볼(무연 솔더볼)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며 "납 성분을 휴대폰에 지니고 다니면 인체에 유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자꾸 휴대폰이 얇아지면서 더 미세한 솔더볼을 개발해야 했다"며 "그렇게 개발하게 된 것이 마이크로솔더볼(MSB)"이라고 설명했다. 덕산하이메탈의 MSB는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한다.
이 회장의 이런 42년 우여곡절이 최근 책으로 정리돼 나왔다.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란 제목은 '소부장 벤처 1세대'로서 그가 겪은 인고의 시간을 상징한다. 그는 "창업 후 좌절하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했던 사연들"이라며 "뒤에 걸어오는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의 지침이 될 수 있단 생각으로 정리를 해서 남겨둘 결심을 했다"며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막장 드라마처럼 자극적이진 않지만, 한 장씩 한 장씩 읽다 보면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란 여유도 드러냈다.
직접적인 벤처 지원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이 창업 학생을 지원하는 펀드에 사재 3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정부와 함께 총 600억원을 조성하는 매칭펀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300억원 출연과 관계없이 벤처기업 육성,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엑셀러레이터도 만들고 있다"며 "소부장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희망적이다'라고 판단되면 다 지원해주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장기 중심에 있는 덕산그룹 역시 벤처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은 "꼭 소재산업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또 이 사회에 편의를 제공하는 영역이면 어디든지 도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면 한다"면서 "어떤 방향이고 어떤 부문이든 공통되게 필요한 것은 결국 '벤처정신' 즉 '벤처혼'을 항상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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