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의 뉴 플라이트]프로펠러기에서 시작한 선대 회장 항공기 연대기①'보잉·에어버스' 시대 연 조중훈, 임대에서 구매로 체질개선한 조양호
허인혜 기자공개 2023-04-07 07:30:01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4일 17: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항공사에게 비행기는 개발보다는 배치의 대상이다. 새 항공기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항로에 적합하고 항공사의 규모와 위치에 딱 맞는 비행기를 골라야 한다. 그러면서도 수익성 높은 비행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항공사 경영진의 역할이다.때문에 우리나라 부동의 1위 항공사이자 3세대 오너가 이끌어온 대한항공은 회장님 연대기와 항공기 변천사가 맞물려 있다. 조원태 회장이 취임과 함께 신기종을 포함한 항공기 전략을 들고 나온 이유도 그때문이다.
조 회장 시대의 항공기 전략은 입체적이어야만 했다. 무조건 많은 승객을 태우는 게 능사가 아니고 수익성이 높더라도 환경(E)에 나쁘면 국제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선대 회장들에게는 놓이지 않았던 여러 고민들이 현재의 젊은 회장에게 당도했고 그 해답은 결국 항공기로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항공'으로 일찌감치 비행 꿈꾼 조중훈
대한항공은 조중훈 전 회장이 창업주처럼 여겨지지만 조 전 회장이 창업한 곳은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그룹이다.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은 대한항공공사이고 그에 앞서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있었다. 여객기 납북과 유동성 경색 등으로 파산한 KNA를 정부가 사들이며 1962년 공사가 됐다.
그럼에도 사들인 이유를 찾는다면 시대적 상황도 있었지만 조중훈 전 회장의 꿈도 큰 역할을 했다. 조중훈 전 회장은 1960년 에어택시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항공'이라는 주식회사를 세운 적도 있다. 한진상사의 기틀을 마련한 주한미군 수송 사업도 운송사업이었다. 꿈을 쫓는 기조는 항공기 확장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조중훈 전 회장은 대한항공 인수 후 돈줄을 묶기보다 풀었다. 항공사의 해답지는 결국 항공기였다. 새 항공기 도입부터 팔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8대였고 그마저도 프로펠러 비행기가 7대였다. 제트기는 DC-9 단 한 대였다. 프로펠러기는 제트기에 비해 값도 싸고 연료비도 적게 들었지만 그만큼 느리고 기체가 작았다.
◇'보잉·에어버스' 양대산맥 구축…점보기 중심 개편
조중훈 전 회장은 그의 취임을 결정한 1969년 주주총회에서 "앞으로 새로 도입할 항공기는 프로펠러기가 아니라 성능 좋은 4발 제트기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듬해 바로 보잉기 도입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세웠다.
보잉기 도입은 또 한번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격이 대당 3000만달러를 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279달러에 불과할 때였다. 조중훈 전 회장은 대한항공 인수에 그랬듯 결심을 밀어붙였다. 그 결심은 3년 뒤 첫 점보기 인수로 이룬다.
보잉기와 에어버스의 양대산맥을 구축한 것도 조중훈 전 회장이다. 1973년 근거리 중형 여객기를 확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에어버스 3대를 도입했다.
전략적으로도 미국의 보잉사만 취급하기보다 프랑스 등 유럽권이 제작한 에어버스를 활용해야 항로 개척에도 유리하다는 계산이었다. 비유럽권에서 처음으로 에어버스를 도입한 항공사가 대한항공이었다.
유럽과의 소통을 열어둔 덕은 석유파동때 봤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두배, 네배로 치솟으면서 대한항공은 5000만달러의 '급전'이 필요했다. 이때 조 회장이 신임으로 돈을 빌린 곳이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이다.
◇'빌리지 말고 사자' 체질개선, 위기를 활주로 삼은 조양호
다만 조중훈 전 회장 시절 비행기들은 대부분 임차 비행기였다. 성능 좋은 새 비행기를 사기에는 대한항공의 입지가 단단하지 못했다. 대한항공이 직접 주문한 비행기는 손에 꼽았고 대부분 해외 항공사가 쓰던 것들을 빌려왔다. 임차 항공기는 글로벌 경기가 출렁일 때마다 대한항공의 재무적 안정을 위협했다.
비행기가 너무 낡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조중훈 전 회장 때만 해도 대한항공의 항공기들은 '퇴역 비행기들의 집합소' 였다. 보잉707, 보잉727 등이 그랬다. 해외 항공사에서 은퇴시키려던 항공기들을 빌려 몇년 더 운항하기도 했다.
체질 개선에 나선 건 조중훈 회장의 아들 조양호 전 회장이다. 조양호 전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992년 사장에 오르며 실질적인 경영자가 됐다. 조양호 전 회장은 항공기 임차보다 구매 투자를 늘려 소유 비행기 비중을 확대했다.
조양호 전 회장이 사장이 된 지 3년차에 항공기 100대를 보유했다. 2005년까지 세운 목표가 200대였는데 다소 못미쳤지만 목표치에 근접했다.
조양호 전 회장 시대까지 대한항공의 보유 항공기 대수는 166개로 늘었다. 프로펠러기 7대, 제트기 1대의 단촐했던 대한항공의 규모가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된 셈이다. 2004년 흑자전환을 앞뒀던 조양호 전 회장은 향후 10년간 10조6000억원을 항공기 투자 등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체질개선 효과가 두드러진건 1997년 IMF 외환위기때 였다. 대한항공의 운용 항공기 112대 중 임차 항공기는 15.68%, 14대에 그쳤다. 자체 소유 항공기가 많았던 만큼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 보유 항공기를 팔아 유동성을 확도하는 한편 재임차로 규모는 유지했다. 1998년에는 보잉737기 27대를 더 사들일 만큼 여유가 있었다.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로 글로벌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03년에도 오히려 비행기를 늘리는 역발상을 내놨다. 초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 기종이었다.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비행기로 지금의 5성급·고급화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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