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4월 10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일이 있을까'라는 이야기가 최근 IB 업계에서 회자됐다.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에게 차입을 하면서 나온 삼성전자의 조달 전략에 대한 가십이다. 회사채 발행에 적극적인 경쟁사 애플의 조달 전략도 곁들여졌다.발행만 한다면 국내외 모든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회사채를 담을 것이다. 대한민국 기업 중 그 어느 이슈어가 삼성전자를 압도할 수 있을까. 채권시장 자금이 삼성전자 회사채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 가면 수급 불안을 가져왔다고 여겨지는 한전채가 떠오른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 수급 불안을 증폭시킨 주범으로 지목됐다.
과연 그랬을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실제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체감 정도는 좀 다른 것 같다. 한전채는 오히려 작년 4분기 회사채 시장의 빛이었다고 말한 이들도 있다. 모두 이슈어들이 발행이 불가능할 때 한전이 채권시장 등대지기처럼 그 자리를 지켜줬다는 것이다.
지난해 10~12월 국내에서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은 15개사. 그 이전 8~9월 121개사와 비교하면 채권시장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다. 발행사도 SK㈜와 SK텔레콤을 제외하고는 한전과 그 자회사들이었다. 그렇게 발행된 채권도 1조원 조금 넘는 수준으로 예년 대비 10% 안팎에 그쳤다. 그나마 한전이 명맥을 잇고 있었던 셈이다.
두번째, 투자자들은 한전채 물량 때문에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게 아니다. 당시는 금리가 정점을 찍을 때라 이미 보유한 채권 그리고 새로 사들일 채권 평가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전략적으로 채권을 살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수급이 아닌 평가손익의 문제가 더 결정적이었다.
그런데도 한전채만 팔린 이유는 고금리 매력에다 디폴트 리스크에서 그나마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전이 망할 리는 없다. 레고랜드 사태가 근간을 흔든 건 크레딧 이슈였다. 한전채 공급 증가보다는 신용 이슈가 핵심이었다.
물론 평소보다 한전채가 더 나오면 수급이 빡빡해지는 건 사실이다. 일부 자금이 한전으로도 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줄 만큼 우리 금융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연기금이 채권시장 투자비중을 더 늘리거나 퇴직연금 등 개인 금융자산이 채권시장으로 더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개인 자산가들은 증권사 리테일을 통해 회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채권시장 규모가 커지면 채권 연계 파생상품,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주식 연계 파생상품 확대 등 금융시장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도 한다. 채권 발행을 한다고 혹은 늘린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금융시장 성장의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전기료 인상을 둘러싼 논쟁의 원인과 해법은 명확하다. 자본잠식을 벗어나기 위해 물건 값을 올리면 되는데 그러자니 소비자들의 불만이 두려운 것일 뿐이다.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전기료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것과 채권을 찍어 시중금리가 오르는 이 두 사실은 경제정책상 모순될 수밖에 없다. 하나를 선택하든 혹은 둘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율하든 결정의 문제일 뿐이다. 괜히 채권시장을 볼모로 잡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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