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 동상이몽]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 일색에 자산운용사 '씁쓸'①사업자 위주로 재편, 펀드 운용 역량 발휘 기회 축소
이돈섭 기자공개 2023-04-26 08:39:58
[편집자주]
지난해 본격 도입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7월 본격 도입된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상품 라인업을 구축하는 한편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자산운용사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퇴직연금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반갑지만 그 사이 사업 확대 기회를 모색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벨은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현 퇴직연금 시장의 분위기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20일 15: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7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본격 시행을 앞두고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하지만 퇴직연금 시장에 펀드 상품을 공급하는 자산운용업계에선 제도 시행에 따른 과실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도 자체가 사업자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이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제시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자들이 복수의 금융상품을 한 데 묶어내면서 개별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이 시장에 상품을 어필하고 운용 역량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작아졌다는 설명이다. 사업자들이 대형 운용사 상품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업자가 쥐고 있는 헤게모니…"운용상품 어필 쉽지않다" 불만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을 복수의 펀드를 묶어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구성했다. 한 포트폴리오 안에 펀드와 보험 및 예금 상품을 섞어 구성하는 식이다. 단일 금융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여러개의 금융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난달 말 고용부가 발표한 사전지정운용 상품 승인 현황을 보면 복수 금융상품으로 구성한 포트폴리오는 191개였다. 전체 포트폴리오 279개 중 68.5% 비중을 차지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자들이 자산배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형식의 상품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품 승인 과정에서부터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터져 나왔다. 운용사 펀드는 이미 그 상품 자체로 자산배분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다른 금융상품과 합쳐 운용하면 운용 효과가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빈티지가 다른 TDF를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에 맞춰 자사 펀드를 홍보하고 싶은데, 사업자 포트폴리오 구성 요소 중 하나로 편입되면서 홍보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터져나온다. 자사 펀드를 홍보하고 자금을 유치하려면 결국 사업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해야 하는 현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논리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특정 상품에 연금 운용에 적합한 자산배분 전략을 녹여내도 사업자가 한 번 더 가공을 거쳐 판매하기 때문에 운용 역량을 발휘할 여지도 줄었다"며 "퇴직연금 시장은 앞으로 커질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사전지정운용제도는 사업자에 유리한 구도로 짜인 상태"라고 평가했다.
◇대형사 펀드 위주로 구성, 중소형사 적립금 유치 어려워
그렇다고 자산운용사의 퇴직연금 시장 보폭이 줄어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전지정운용제도가 시행되면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창구가 추가 확보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도 '사전지정운용제도는 사업자와 운용사에 모두 유리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보험업계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운용사에 위탁해 시장에 '디폴트옵션 전용펀드'를 선보이면서 운용사 입장에선 적립금 규모를 키워 보수 수익을 확보할 수 잇는 기회도 커졌다는 평가다. 별도의 세일즈 마케팅 활동없이 운용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31조7240억원. 이중 상당 비중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으로 일부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옮겨지기만 해도 자산운용업계에 유입되는 적립금 규모는 상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형 운용사 펀드가 사업자 포트폴리오에 채택되면서 중소형 운용사가 시장 확대 과실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말 미래에섯자산운용 펀드를 활용해 승인받은 사업자 포트폴리오 수는 124개로 삼성자산운용(38개) 등 경쟁 운용사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현 시장 상황이 펀드 판매에 부정적인 것도 부담스럽다. 최근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원리금보장형 상품 매력도가 커지면서 퇴직연금 적립금의 실적배당형 상품 유입 속도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업자도 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 이후에도 원리금보장형 상품 우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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