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사이드킥 리포트]소구경탄에서 스마트탄까지, 풍산의 방산 50년①총포분야 방위산업체 지정으로 탄약사업 시작… 오너일가 육성 노력에 캐시카우로 성장
강용규 기자공개 2023-06-20 07:30:17
[편집자주]
K-방산이 전차와 전투기, 미사일 등 분야에서 수출 성과를 내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방산업계에는 '주인공'에 가려져 있으나 총포(탄약)나 부품 등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는 '사이드킥(조연)'도 여럿 존재한다. 이제 K-방산 호조의 수혜는 점차 사이드킥에까지 미치고 있다. 더벨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방산업체들의 경영 현황과 전략을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15일 16: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풍산은 동(구리)과 동합금을 활용해 판재나 선재, 봉재 및 주화용 소전(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동전) 등을 만드는 신동사업에서 시작한 기업이다. 구리제품 기술력을 바탕으로 탄약류를 생산하는 방산사업도 영위하고 있으며 최근 K-방산의 수출 호조를 계기로 방산부문이 점차 주목받고 있다.풍산의 방산부문은 우리 군이 채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탄약을 만든다. 군용 탄약뿐만 아니라 레저용으로 쓰이는 스포츠탄, 추진화약 등 탄약부품까지 생산하며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풍산의 방산사업은 어떤 성장 과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 국내 1호 방위사업자로 시작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풍산으로
풍산은 그룹의 창업주인 류찬우 전 회장이 1968년 풍산금속공업을 설립한 데서 시작했다. 현재의 사명인 풍산으로 변경한 것은 1989년이다. 방산사업에 뛰어든 것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종합탄약공장인 안강사업장을 준공한 1973년으로 올해가 50년째다.
정부는 1971년 방위산업을 추진할 당시 4대 핵심사업 및 사업자로 자동차의 신진자동차, 조선소의 현대조선중공업(현 HD현대그룹), 주물의 대한주철공업, 총포(탄약)의 풍산을 선정했다. 이들 중 풍산이 1호 방위사업자의 타이틀을 쥐었다. 즉 풍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방위산업체다.
당시까지만 해도 탄약에 들어가는 화약은 국내에 한국화약(현 한화) 등 사업자가 있었으나 탄약 외피(탄피)는 아직 사업자가 없었다. 탄피의 원재료는 구리합금으로 관련 제품의 생산기술을 보유한 풍산이 방위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방위산업은 정부의 중장기적인 국방계획에 따라 시장의 규모가 결정되는 만큼 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다만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갈수록 높아지는 정부의 기술적 요구 수준에 지속적으로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풍산은 처음 소총용 5.56mm 소구경탄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곡사포용 155mm 대구경탄까지 생산한다. 재래식 탄약뿐만 아니라 전차와 병력을 동시에 제압하는 이중목적탄, 유도무기에 쓰이는 스마트탄 등으로 꾸준히 사업 범위를 넓혀 왔다.
현재의 풍산은 기존 풍산이 2008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설립된 신설 사업법인이다. 이 분할 이후 방산사업의 해외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17개에 머물렀던 수출 대상국가가 현재는 60여개 나라까지 늘었다.
군용 탄약뿐만 아니라 수렵이나 스포츠 경기에 쓰이는 스포츠탄 역시 주요 제품이다. 자체 스포츠탄 브랜드 PMC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점유율 20% 이상의 톱3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을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
◇ 정부가 밀고 오너가 끈 방산사업, 이제는 캐시카우로 우뚝
풍산이 방위산업을 시작한 것은 정부의 제안 때문이었다. 류찬우 전 회장은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뒤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시절 나라를 위해 활약했던 것처럼 류 전 회장도 나라를 위해 힘써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이 있다.
풍산그룹 오너 일가는 유교적 가풍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이름 풍산부터가 류 전 회장의 본관인 '풍산 류씨'에서 따왔다. 서애 류성룡은 류 전 회장의 12대조로 류 전 회장은 1976년 '서애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조상을 기리기도 했다. 또한 류성룡의 저서 징비록은 류 전 회장뿐만 아니라 현재 그룹 총수를 맡고 있는 차남 류진 회장의 애독서로도 알려져 있다.
풍산그룹 측은 창업주가 징비록에 담긴 자주국방 정신을 토대로 방위산업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재계에서는 2015년 방영된 드라마 '징비록'의 제작을 풍산그룹이 후원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국내 방산사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기체계에 편입돼 있기 때문에 미국 정치권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류 전 회장은 1989년 풍산이 미국에 현지 신동법인 PMX인더스트리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W.부시(아버지 부시)와 관계를 맺었다.
아버지 부시와 류 전 회장의 친교는 류진 현 회장과 아버지에 이어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W. 부시(아들 부시)의 친교로 이어졌으며 풍산 오너일가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치권 인맥을 확보하는 통로 역할도 했다. 류 회장은 지금도 재계에서 '미국통'으로 손꼽히며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미 사절단에 합류하고 있다.
이처럼 풍산은 정부의 제안으로 방산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등 떠밀리듯' 사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등 사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재계에서는 풍산의 방산사업을 놓고 오너의 성향이 기업의 성장을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으로 풍산의 사업부문별 실적을 살펴보면 신동부문이 매출 3조3768억원, 방산부문이 매출 988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신동부문이 외형은 3배 이상 크다. 그러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로는 신동이 685억원, 방산이 1476억원으로 방산부문이 오히려 2배 이상 크다.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2019년을 제외한 나머지 4년 동안 방산의 EBITDA가 신동을 웃돌았다. 심지어 2019년에도 EBITDA 기준 이익률은 방산의 1.8%가 신동의 0.8%보다 앞섰다. 현재 풍산에게 방산사업은 본업인 신동사업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캐시카우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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