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경쟁]삼성 미래전략 담은 이재용의 '차 pick'②업무용 차량, 2018년부터 제네시스·팰리세이드 교체…정의선과 AP 공동개발 급물살
손현지 기자공개 2023-06-30 09:54:27
[편집자주]
글로벌 경기위축 등 각종 변수가 불어닥치며 산업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업들마다 실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신사업 진출을 나선 가운데 타사와 시너지를 내기 위한 합종연횡도 불사하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AI 반도체, 전장사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순간들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28일 14: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치인에게 패션 전략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넥타이도 정치 의미를 담은 오브제(objet·물건)로 활용하곤 한다.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여겨진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비슷하게 카(car)를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삼는다. 유독 공개 석상에 현대차를 몰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차 모델을 애용하는 데에는 사업상 전략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대 회장처럼 완성차 업체에서 현대차와 겨루기 보단 핵심 부품 공급사로서 두 그룹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전고체 배터리부터 마진이 높은 고부가 차량용 반도체 분야까지 현대차라는 든든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비결로도 지목된다.
◇체어맨 교체 의미…완성차 사업 저울질 했던 걸까
이 부회장이 2007~2015년 업무용으로 타던 차는 현대차 '에쿠스' 였다. 그러다 2015년 업무용 차를 쌍용차 '체어맨'으로 바꿨는데, 당시 재계에선 삼성이 삼성자동차 매각 이후 다시 완성차 사업에 진출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앞다퉈 내놨다.
마침 삼성이 독일계 차량 부품업체인 하만을 인수하며 전열을 다질 때였다. 2016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 추도식에 타고 온 차량도 현대차가 아닌, 제너럴 모터스(GM)의 쉐보레 익스플로러밴였다.
한동안 현대차와는 묘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하만으로부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카오디오를 공급 받아왔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뒤, 협력사를 LG전자와 보스(BOSE) 등으로 교체해버렸다. 삼성이 다시 완성차 사업을 시도할 경우 가장 큰 경쟁사는 현대차가 된다. '견제' 기조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제네시스 EQ900, 관계 재정립…협력의 시작
2018년 이 회장이 타던 체어맨이 한 중고차 매물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 시기 이 회장은 업무용 차량을 체어맨에서 현대차 제네시스 'EQ900'로 교체했다. 업계에선 삼성이 완성차 진출을 타진하기 보다 전자장치(전장) 부품과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집중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평가했다. 현대차와 경쟁하기보다는 완성차(현대차)와 핵심 부품 공급사(삼성전자)로 관계를 재정립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2년 뒤 2020년 10월, 언론의 관심이 쏠린 장면이 있었다. 故이건희 선대회장의 장례식장에 이재용 회장이 현대차의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를 타고 등장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들의 주목한 자리에서 직접 현대차를 몰고 나온 것이니 만큼 회자됐다.
이 회장의 차량 변화는 삼성의 완성차 사업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던 키였던 만큼, 오랜 라이벌 구도를 접고 협력 태세로 전환할 것이란 관측이 줄을 이었다. 공식석상 외 평상시에도 제네시스 G90, 공항에 나갈 때는 기아 카니발 등 그때그때 바꿔탔기 때문이다.
팰리세이드를 기점으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간 경쟁 구도는 옅어졌단 분석이다. 이 회장은 작년 6월 정의선 회장의 장녀 결혼식에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인 'G90'를 타고 참석해 긴밀한 비즈니스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G90 모델은 정 회장과 처음 배터리 회동(2020년 5월)을 하기 직전 바꾼 업무용 차다.
이 회장의 최근 1~2년 애마도 큰 변화는 없다. 제네시스 G90과 제네시스 EQ900 두 대가 많이 포착된다. 제네시스 EQ900은 법원을 드나들며 재판을 받을 때 주로 타고 있으며 G90은 외부행사를 위한 이용수단으로 이용하는 편이다. 작년 '2022 호암상 시상식' 때도 제네시스 G90를 이용수단으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테슬라 기웃, 고객사 확대하나
이 회장이 고객사 중에서도 현대차에 공을 들인 건 글로벌 모빌리티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라는 평가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두 차례 회동을 기점으로 '차량용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서 협력하며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양사 개발팀이 국내에서 근무하기에 근거리에서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전장 부품업은 자동차 기업 간 배타적 협력 공급망 구축에 따른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파트너십이 가장 중요한데 이미 글로벌 입지가 두터운 현대차와의 협력이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 DS(반도체) 시스템LSI사업부도 AP칩셋 무게 중심을 차량용으로 옮기고 있다. 기존에는 수억개의 칩을 필요로 하는 모바일용 AP에 집중해왔지만, 자율주행차 보급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인 IHS에 따르면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작년 이미 680억달러(약 88조6000억원)를 넘어섰다. 오는 2029년 말에는 두 배가 넘는 1430억달러(약 186조4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삼성과 현대차와 협력 포인트는 인포테인먼트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차량용 반도체는 △구동반도체 △인포테인먼트 반도체 △네트워킹 반도체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인포테인먼트용 AP는 영상정보와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구현하는 핵심 반도체 칩이다.
다만 앞으로도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 회장은 신라호텔에서 열렸던 2023 호암상 시상식에 벤츠 프리미엄 SUV인 마이바흐 GLS를 타고 나왔다. 고객사 관리 확대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달 10일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하며 협력 여지를 남겨놨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오토' 시리즈를 폭스바겐, 아우디 등에도 공급하고 있다.
피재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은 "운전자에게 최적의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최첨단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해 전 세계 다양한 고객과 파트너사,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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