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회계 가이드라인]'고객 예치 코인'도 자산…거래소 몸집 불어날까①투자자보호 요건 충족 또는 재무제표상 자산에 계상…거래소에 지침 내린 금융당국
노윤주 기자공개 2023-07-17 09:31:51
[편집자주]
혼란스런 가상자산 회계·공시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금융당국이 나섰다. 가상자산별 성격과 공시 범위, 매출 포함 여부 등을 정리한 회계 지침을 마련했다. 기업의 회계 명확성을 개선할 뿐 아니라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의 부채 인식, 리저브(준비금) 물량 주석공시 등이 의무화되면서 투자자 보호 효과도 기대된다. 새로운 회계 가이드라인이 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알아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3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회계·공시 지침을 배포했다. 가상자산 거래가 활발해지고 이를 보유 중인 기업이 증가했지만 지금까지 명확한 회계처리지침은 부재한 실정이었다.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함은 물론 기업들도 회계에 혼선이 있었다.당국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규율체계가 마련되는 시점에서 회계 불확실성도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상자산 보유 비중이 큰 가상자산거래소 역시 당국의 지침에 따라 회계를 진행해야 한다. 그간 거래소들은 원화 예치금과는 달리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자산으로 계상하지 않았다. 자산의 정의와 인식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는 고객 위탁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원화와 동일하게 부채로 인식해야 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 규모가 거래소별로 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재무제표 상 거래소의 자산 규모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 "제시 요건 못 맞추면 고객 위탁 가상자산도 기업 자산에 포함"
금융당국은 거래소를 포함한 가상자산사업자가 고객의 가상자산을 위탁 보유 중인 경우 이를 자산·부채로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 거래소들은 재무제표에 고객 위탁 가상자산을 포함하지 않았다. 단지 수량과 일부 종목, 원화 환산액에 대해서는 주석을 통해 공시해 왔다.
가상자산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고려해 부채·자산 인식 여부를 결정하라는 게 당국의 지침이다. 거래소는 위탁받은 가상자산을 명확하게 식별하지 못하면 재무제표상 부채, 즉 회사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당국은 사고발생을 대비해 지침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고객 위탁 가상자산이 기업 부채에 포함돼 있다면 해킹 사고 시 거래소가 책임지고 이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다만 당국이 기업에게 투자자보호 요건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다면 재무제표에 부채·자산으로 계상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을 줬다. 유연성을 두고 기업에게 결정권을 부여한 셈이다.
이는 선제적으로 가상자산 회계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이번에 당국이 발표한 지침은 유럽 사례와 가깝다. 유럽재무보고자문위원회(EFRAG)는 2020년 가상자산 회계기준 토론서를 발표하고 고객 위탁 가상자산에 대한 경제적 통제 판단지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투자자 보호 방법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필수로 자산에 포함시키라는 미국,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3월 고객 위탁 가상자산을 부채·자산으로 인식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일본도 자금결제법을 개정하면서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 사업자의 법적 지위 등을 규정했다. 이와 함께 사업자가 고객 위탁 가상자산을 부채·자산으로 인식하도록 회계처리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
기업의 부채·자산 인식 여부와 별도로 고객 위탁 가상자산에 대한 주석 공시는 의무화된다. 현재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인 거래소들 대다수는 주석을 통해 고객 보유 가상자산 수량과 환산액을 공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종목에 대한 설명만 첨부돼 있고 나머지 종목은 '기타'로 묶어 처리 중이다. 앞으로는 종목(종류), 수량, 보관방법, 수탁사 이용 시 해당 외부기관에 대한 설명 등을 필수로 추가해야 한다.
◇고객 코인 부채 포함 시 거래소 자산 규모 수십조원대로 커져
지침은 오는 2024년 1월 1일 이후 시작되는 회계연도부터 반영해야 한다. 만약 거래소들이 위탁 가상자산을 부채로 처리할 경우 기업 자산 규모가 매우 커질 전망이다. 이 경우 두나무, 빗썸 등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연달아 대기업집단에 지정될 수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고객 위탁 가상자산 규모는 22조4742억원이다. 이 규모만으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선정 기준을 초과한다. 같은 분기 두나무 자산총계에 고객 위탁 가상자산까지 더해진다고 가정했을 때 자산규모는 30조원가까이 불어난다.
공정위는 가상자산거래소의 고객 예수부채까지 모두 자산에 포함시켜 대기업 지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나무는 2021년 말 기준 자산 10조원을 넘겨 지난해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이 됐었다. 2022년에는 6조원을 넘겨 올해 공시대상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점유율 2위사인 빗썸의 올해 1분기 자산총계는 1조9229억원이다. 대기업 선정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 다만 고객 소유 가상자산이 부채로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일 분기 빗썸이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아 보관 중인 가상자산의 환산액은 5조3471억원이다. 이를 부채로 인식한다면 자산총계는 7조2700억원대로 불어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자산 인식에 부담을 느낄 거래소들이 고객 위탁 가상자산을 재무제표에서 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상세한 투자자보호 요건을 내놓는다면 거래소들은 이를 준수해 고객 소유 가상자산을 현행과 같이 자산에서 제외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두나무가 대기업집단에 선정될 때 금융사처럼 고객 예수부채는 회사 자산에서 제외하고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현재 재무제표에 계상되고 있는 원화 예치금도 자산에서 빼고 싶어 하는데, 되레 가상자산까지 더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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