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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새 길을 묻다]'은행 옥상옥' 금융지주, 자본시장으로 중심축 옮길까[금융지주 체제]④기존 틀 깨고 투자은행 발전 유도 움직임…인위적 변화 어렵다는 견해도

최필우 기자공개 2023-08-31 07:26:12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들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애플 통장까지 나왔다. 애플 통장엔 석달만에 100억달러, 12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종산업간 결합은 물론 영역과 경계가 무너지면서 금융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한국 금융은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규제와 관치의 테두리 안에서 더딘 변화를 보이지만 조금씩 새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 및 연구소 협회의 브레인들을 찾아 한국 금융 산업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고 그들의 고민과 변화 방향과 속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25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지주 제도는 2000년대 초반 도입 후 은행의 '옥상옥'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은행 외 금융산업도 활성화하자는 도입 취지와 달리 은행장 위에 회장이 군림하는 비효율적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금융지주의 높은 은행 의존도는 여전하다. 여전히 지주 회장은 은행 출신 임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고 전체 순이익에서 은행 비중이 압도적이다. 나머지 계열사를 금융지주가 아닌 은행 자회사로 뒀어도 실상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정관계와 금융권에서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업은행이 아닌 투자은행(IB)을 육성해야 실물 경제 발전에 낫다는 것이다. 수십년 간 형성된 금융지주 업태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부정적 견해 또한 존재한다.

◇은행 출신 회장 '대세'…은행 순이익 '과반'

현재의 금융지주 형태는 2000년 10월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며 도입됐다. 실질적으로 외환위기 여파로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법 제정이었으나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려는 의도도 있었다.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유도해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 국면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지주 순이익이 급증하자 '이자 장사' 논란이 불거졌고 정관계에서 금융지주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주 회장이 공공재 성격인 금융지주의 경쟁력 및 서비스 강화보다 옥상옥에서 장기 재직만을 노린다는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은행 순이익 비중은 2023년 상반기 기준

국내 금융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5대 금융지주 현황을 보면 금융지주가 사실상 은행의 상위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우선 CEO 다수가 은행 출신이다. 외부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제외하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모두 계열 은행에 재직했던 인물들이다. 다른 계열사 출신 CEO는 없다.

순이익 측면에서도 은행이 압도적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수년간 비은행 계열사 인수합병(M&A)에 힘을 썼다곤 하지만 올 상반기 기준 은행 순이익 비중은 각각 62%, 64%에 달한다. 비은행 분야가 약한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91%, 96%다. 은행이 그룹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보니 은행장 또는 은행 고위 임원이 지주 회장으로 이동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여진다. 은행 출신 회장은 은행 중심의 경영 전략을 펼치는 데 익숙하다. 겸업화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는 구조라 보긴 어렵다.

정관계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에게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상업은행 중심의 구조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상업은행 중심의 금융지주가 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편하게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치권과 금융 당국의 시각이다. 금융지주의 투자은행 기능을 강화해 역동성을 부여하는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 금융투자업 모델로도 충분"…"자본시장 활성화 목적 명확히 해야"

대표적인 자본시장 활성화 명분은 저성장 극복이다. 상업은행은 구조적으로 모험 자본에 투자하기 어렵고 대출도 담보나 현금 흐름이 확실한 곳에만 제공한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에는 상업은행이 산업 성장을 견인하는 금융기관으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저성장 시대에는 투자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써 상업은행에서 투자은행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 금융지주 체제는 분업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상업은행은 본연의 기능을 하도록 두고 금융투자업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업은행업을 굳이 리스크에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미 국내 자본시장이 활성화돼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요 대기업은 대출을 주요 자금 조달 채널로 사용하지 않고 있고 주식 또는 회사채 발행에도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은행 대출과 자본시장 중 자금 조달 수단을 정하는 주체인 기업의 선택에 따라 금융지주 형태도 자연스럽게 변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분업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누가 판을 짜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수십년간 고착돼 온 체제로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며 "현 금융지주 체제에서도 금융투자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고 기업들은 이미 자본시장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지주 모델이 국내 사정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은 전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자본시장 규모가 큰 나라인데 국내 정관계에서 부자연스럽게 영미식 금융 모델을 따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일본 등 은행 비중이 큰 나라가 있는 것처럼 한국도 자연스럽게 현 구조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부소장은 "투자은행 규모가 예외적으로 큰 미국을 봐도 규모만 놓고 보면 은행이 더 크고 이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며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왜 투자은행을 키워야 하는가야 대해 더 구체적인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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