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판 '32년 한 우물',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가보니 [르포] 일본 독점 저지한 전자부품산업의 산실, 내년 5공장 완공
세종=김도현 기자공개 2023-11-07 09:58:31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6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세종시가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참 전인 1991년. 당시 삼성전기는 조치원사업장(현 세종사업장)에서 PC용 다층인쇄회로기판(MLB) 생산을 시작으로 반도체 기판 시장에 뛰어들었다. 1997년부터는 고부가 패키지기판 제작에 돌입하면서 이 분야 일본 독점의 종말을 알리기도 했다.현재 행정수도이자 특별자치시로 거듭난 세종시에서 삼성전기는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반도체 기판 양산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세종사업장은 패키지솔루션 사업부의 핵심 생산기지다운 모습으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미래 수요 대응 차원에서 생산능력(캐파) 확대를 위한 공사도 한창이었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 패키지기판 중요성 증대
세종사업장은 세종시 명학산업단지 내 최대 규모(5만3000평)를 자랑한다. 축구장 24개 크기에 1~4공장을 비롯해 지원동, 복지동 등 12개 건물이 세워져 있다. 1800여명 직원이 근무 중으로 세종시에서 가장 고용 인원이 많다.
이곳은 삼성전기 국내 사업장 중 유일하게 단일 품목을 만든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에 투입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메모리, 5세대(5G) 이동통신 안테나, 전장용 반도체 등에 필요한 패키지기판이 대상이다.
패키지기판은 칩과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연결하고 외부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 몸으로 치면 칩이 두뇌, 패키지기판은 뼈이자 뇌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 및 혈관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성능에 대한 기대치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던 패키지기판까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반도체 기판 위에 하나의 칩이 올라가는 단순한 구조였으나 회로 패턴이 수 나노미터(nm) 단위로 세밀해지고 여러 반도체를 한 공간에 장착하는 시스템온칩(SoC) 형태가 늘면서 패키징 기술 고도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난 삼성전기 관계자는 "칩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고성능과 저전력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면서 "멀티 패키지, 다층 패키지 등 기술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패키지기판 제조난도와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세종사업장 차별화 기술 '임베딩'
이러한 추세에 삼성전기는 기술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종사업장 1~2공장은 전공정(프론트), 3~4공장은 후공정(백엔드)을 담당한다. 각각 회로 배선 구현, 표면 처리가 메인이다. 구체적으로 전공정은 회로 형성, 적층, 도금 등이 있고 후공정에는 솔더레지스트(SR) 과정이 있다.
회로 형성 단계는 반도체 공정과 유사하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설계도 기반으로 회로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패키지기판 위에 특정 빛에 반응하는 감광성 고분자 물질 포토레지스트(PR)를 얇게 바른 뒤 원하는 패턴의 마스크를 올려놓고 빛을 조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적층은 말그대로 쌓는 공정이다. 회로 형성이 완료된 내층 기판과 층과 층 사이에 절연층을 겹친 후 일정한 온도와 압력을 가해 여러 층의 기판 반복적으로 쌓게 된다. 도금은 적층된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드릴로 구멍(Via)을 내고 표면을 도금해 각 층간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기술이다.
SR의 경우 기판에 형성된 회로의 손상 및 성능 저하 방지를 위해 도포되는 절연물질이다. SR 잉크 성분에 따라 기판 외부의 색깔이 결정된다. 우리가 전자기기에서 흔히 보는 녹색 판대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련의 과정에서 세종사업장의 자부심은 크게 3가지로 꼽힌다.
우선 임베딩 기술이다. 갈수록 회로가 연결할 신호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경로도 길어졌다. 이렇게 되면 신호 전달 과정에서 손실이 늘어난다. 임베딩 공법은 기존 기판 위에 실장하던 캐패시터 등 수동부품을 내장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신호 경로 길이를 줄여 전력 손실을 50% 이상 낮추고 고속 신호 전달도 가능케 한다. 국내에서 해당 공법을 구현할 수 있는 건 삼성전기 뿐이다.
다음은 Via 가공이다. Via는 층들을 연결해주는 구멍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8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면적 안에 50㎛ 구멍을 오차 없이 뚫어야 해서 정교한 가공 기술력이 필요하다. 삼성전기는 A4 용지 두께 10분의 1 수준인 10㎛ Via까지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극자외선(EUV)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노 단위 칩에 대응할 수 있는 고정밀 회로 선폭을 가진 패키지기판이 필요해졌다. 이에 삼성전기는 머리카락 두께 40분의 1인 3㎛ 회로 선폭까지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공장 증설로 차세대 제품 준비
세종사업장에서 제작하는 제품을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플립칩 칩스케이패키지(FCCSP), 울트라씬 칩스케일패키지(UTCSP), 무선주파수(RF)-시스템인패키지(SiP) 등이 있다.
FCCSP는 고집적 반도체와 기판을 FC 범프로 연결해 전기 및 열적 특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주로 스마트폰용 AP 등에 쓰인다. UTCSP는 칩과 패키지기판을 얇은 금선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칩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 80%에 달한다. 모바일용 메모리 등 멀티칩 패키지(MCP)에 활용된다. RF-SiP는 하나의 기판에 여러 칩과 수동소자를 실장하는 모듈형태 기판으로 5G 모듈 등에 적용된다.
더 나아가 삼성전기는 차세대 패키지기판 수요를 위해 세종사업장 내 5공장을 내년 상반기 완공 목표로 구축 중이다. 여기서는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로 각광받는 ARM 기반 프로세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적층 방식인 2.5차원(D) 패키지 등 고성능 반도체 맞춤형 아이템을 생산할 방침이다.
신공장에는 해당 사업장 가운데 처음으로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통합 생산이 가능한 설비 및 인프라, 물류 자동화 생산체제를 갖춘다.
임승용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단지장(부사장)은 "최적의 공정 배치, 물류 자동화 등 최고 인프라 및 청정 환경을 마련할 것"이라며 "2024년 5월이면 외관이 완공되고 2층 일부까지 가동 개시하게 된다. 나머지 2층, 3층 설비는 2025년까지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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