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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조선 3사]'금세기의 호황' 운·때·준비 삼박자 잘맞은 전성기[성장] "목선이나 만들라" 열세에서 수출 효자…3년 일감 쌓은 3사의 각자 '비기'

허인혜 기자공개 2023-11-20 07:23:22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6일 07:57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0~1990년대, '골치 아픈 조선3사'라는 골자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조선3사가 골머리를 앓았던 이유는 다름아닌 '수주가 너무 많아서'. 수주상담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주문을 어떻게 선별할 지가 골칫거리라는 행복한 비명이다. 1970년대 초 조선업에 뛰어들어 꽤 오랜 기간 발품을 판 뒤에야 첫 배의 주문을 받았던 조선3사가 업황 호황에 따라 순풍을 단 셈이다.

조선3사의 전성기는 2000년대까지 10년을 주기로 3번이나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인프라와 수출 확장기로, 1990년대에는 조선경기 활황에 일본에서 넘쳐 흘러온 일감이 몰려들었다. 2000년대는 조선3사가 글로벌 톱티어 반열에 오를 만큼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꽃놀이패를 쥔 동안 조선3사는 각자의 특수영역을 구축하며 미래 차별화를 꾀했다.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성기를 성큼성큼 걷는 사이에도 오너가의 다툼이나 그룹의 해체, 손바뀜처럼 불운도 닥쳤다. 한솥밥을 먹을뻔한 두 기업도 있었다. 다만 극호황기였던 2010년까지는 업황의 빛이 어둠을 가렸다.

◇'금세기말까지 호황' 자신 속 글로벌 톱티어로

뼈아픈 조롱은 때로 성장의 기폭제가 된다. 게다가 비아냥의 대상이 '기개'의 대표주자인 정주영 선대회장이었다. 정주영 선대회장이 조선업에 뛰어들 때 우리 정부의 한 인사는 "현대가 조선으로 성공하면 내가 손가락에 불을 붙여 하늘로 솟겠다"고 했고 서독의 관료는 "목선이나 만드시라"고 속을 긁었다. 실제로 1호 선박을 수주하는 데는 조선3사 모두 애를 먹었다.

20년도 채 되지 않아 상황이 역전됐다. 때도 운도 좋았고, 일찌감치 조선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삼은 판단도 주효했다. '때'라면 1980년대부터 시작된 조선업계 호황이었고 '운'이라면 일본과의 합작이 많았던 우리 조선업계의 상황이었다. 조선사업에서 명실공히 1위였던 일본은 밀려드는 글로벌 선박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호황이 이어지는 데도 전년대비 수주량이 40%씩 늘어날 정도엿다. 1970년대부터 선박건조에 뛰어든 국내 조선3사에도 주문이 몰렸다.

당시 조선업계의 일감 자신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은 '금세기말까지 호황'이다. 1980년대 후반 이미 적어도 새천년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일감호황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었다. 1990년대에는 향후 3년치의 일감을 쌓아두고 일했다. 1990년대 초반 결국 일본의 두배 이상 수주잔량을 기록해 글로벌 1위가 됐다.

잘 팔린다고 많이 만들어 값이 싸지기도 쉽지 않은 산업이었다. 1988년에는 전년 대비 갑절이나 배값이 올랐다는 전언이다. 그만큼 잘 벌었다. 현대중공업 시절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1993년 전체 국내 기업 중 납세액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0년대, 조선업 최대 호황기

2010년까지를 국내 조선업계의 리즈시절(Leeds時節) 이라고 부른다. 2002년 산업자원부 신년 회의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다. 2001년 조선업계는 97억1000만달러의 수출을 달성했다. 당시 신국환 산자부 전 장관이 김형벽 현대중공업 회장과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을 한 자리에 불러 '100억달러 수출'을 부탁할 정도였다.

조선3사는 호황기를 즐기는 한편 각자가 잘하는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조선3사가 일본을 눌렀던 1993년 한화오션의 수주량이 412만1000톤(t)으로 단일조선사 중 세계 1위였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키우며 전략을 탄탄하게 짰다.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이 2009년 카타르 국영 해운선사 QGTC와 세계적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에 인도한 LNG운반선 4척.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의 힘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과 LNG선이었다. 한화오션의 VLCC와 LNG는 1990년대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1990년 영국 최대선사 고타스 라센에게서 4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VLCC 4척을 수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쿠웨이트와 스웨덴, 영국에서도 6척의 주문을 받았다.

인기 비결은 기본모델을 조금씩 바꿔 판매하는 표준선형이 아닌 맞춤형 전략었다. 정형화된 선박이 아니라 주문자 맞춤형 생산 방식을 택하며 다양한 유형의 LNG선을 생산하게 됐고 이 설계능력을 경쟁력 삼았다. VLCC와 LNG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산업은행 관리체제 아래서도 호황기를 제대로 누렸다. 해마다 전체 수주량의 상당부문을 LNG선으로 채웠다.

HD한국조선해양은 다양한 선박 건조능력이 장점이었다. 벌크화물선과 컨테이너선, 원유운반선, 크루즈선 등이다. HD한국조선해양의 장점으로는 가격경쟁력과 중국과의 차별화 등이 꼽혔다. 전체 선박 수주량으로 보면 2000년대 이미 글로벌 1위에 랭크됐다.

삼성중공업은 1990년대부터 해양플랜트 부문에 집중해 왔다.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가스운반선, 원유개발선, 카페리선 등 여러 선박을 건조해 경험을 쌓았다. 특히 특수선 부문에 강점을 키웠다. 부유식원유생산및 저장설비(FPSO), 셔틀탱커, 해양플랜트 부문의 매출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올려잡을 만큼 집중도가 높았다.
삼성중공업이 2009년 개발한 세계 최대 반잠수식 원유시추시설 설비 웨스트에미넌스호. 사진=삼성중공업

◇왕자의 난과 그룹 해체, 중간지주사

언젠가는 팔려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은 조선3사의 판도를 흔들어놓을 만한 재료였다. 수출과 원자재 수입, 여러 글로벌 지표가 이익률의 근간인 조선업은 그만큼 외환위기의 역풍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영향이 컸던 곳은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다.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조선공업으로 독립했고 산업은행의 관리 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2019년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한화오션의 매각을 합의하며 현대중공업을 조선통합법인과 사업법인으로 물적 분할하기로 했다. 이 조선합작법인(중간지주)이 현재의 HD한국조선해양이다. 현대중공업지주가 현대중공업을 물적 분할해 세운 중간지주에 보유지분을 출자하는 방안이었다.

지배구조까지 바꿨지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기업결합을 최종불허하면서 2022년 딜은 인수합병 실패로 끝났다. 같은 해 9월 산업은행이 한화에 매각을 추진해 10월 양사가 협의했고 이듬해 4월 EU의 승인을 받았다. 한솥밥을 먹을뻔 했던 양사는 다시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조선3사로 맞붙게 됐다.

또 다른 외풍도 있었다. 오너가의 의지로 키운 사업은 그만큼 탐나는 부문으로 성장한다. 세대가 거듭할 수록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는 재계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탐나는 사업은 '난'을 일으키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현대가 왕자의 난도 마찬가지다.

범 현대가의 근간은 1973년 설립된 현대조선중공업이다. 2000년 일어난 경영권 다툼으로 현대가는 크게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쪼개졌다. 동전의 양면처럼 현대중공업이 2010년 조선업에 더 바짝 집중하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출범 50년 만인 2022년 사명을 현대에서 HD현대로 바꾸며 독자영토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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