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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리더십 시프트]아버지의 사람들, 아들의 사람들①오너 세대교체 따라 다시 짜이는 전문경영인 진용

조은아 기자공개 2023-12-04 07:26:10

[편집자주]

'물갈이'는 어느 정도 본능에 가깝다. 조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건 믿을 만한 '자기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그룹에서 세대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한화그룹 등 마무리를 코앞에 둔 곳도 여럿이다. 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 오너와 함께 한 시대를 만들었던 전문경영인들도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하나둘 그룹을 떠나고 있다. 더벨이 주요 그룹의 오너 교체와 이에 따른 전문경영인들의 '성쇠(盛衰)'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28일 15: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조천자일조신(一朝天子一朝臣).' 황제가 바뀌면 신하가 바뀐다는 말이다. 현대 정치를 봐도 지도자가 바뀌면 첫 단추는 예외 없이 인사 교체다.

국내 재계 역시 마찬가지다. 1세에서 2세로, 2세에서 3세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관심은 인사에 쏠린다.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새 인물을 쓰는 건 경영학적 관점으로 봐도 합리적이다.

최근 LG그룹에서 권영수 부회장이 물러났다. 사실상 구본무 시대의 완전한 마무리로 여겨진다. 다른 그룹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오너의 세대교체가 활발해지면서 오너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전문경영인의 진용도 다시 짜이고 있다.

◇연착륙 선택한 정의선·구광모 회장

과거 아버지가 키운 2인자와 새로운 1인자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어느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 취임 이후 첫 행보로 과거와의 단절을 선택하는 이도 있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과 소병해 전 비서실장 얘기다.

소 전 비서실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최측근 인사다. 1978년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장이 된 뒤 12년 동안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취임한 뒤 3년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채 은둔하던 시절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경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소 전 실장을 삼성생명으로 내보냈다.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병철 창업주가 살아있을 때부터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둘은 1942년생으로 나이도 같았다.

다만 모든 관계가 그렇게 껄끄럽지는 않았다. LG그룹의 변규칠 고문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나서지 않아 임직원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구자경 명예회장의 퇴임과 동시에 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놨다. 당시에도 '그답다'는 평가가 나왔다.

몇 년에 걸쳐 조용히 주변을 바꾸는 '연착륙'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이 대표적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1978년생으로 취임 당시 다소 어린 편이었다. 갑작스럽게 회장에 오른 만큼 기반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구 회장이 취임한 2018년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 6명 가운데 5명이 자리를 지켰던 이유다.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은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났지만 이사회 의장 자리는 유지했다.

이후 5년에 걸쳐 6명의 부회장이 모두 떠났다. 현재 부회장은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과 권봉석 ㈜LG 대표이사 부회장 두 명뿐이다. 둘 모두 구광모 회장이 직접 '선택'한 인물들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부회장, 수석부회장, 회장에 순차적으로 오르며 그룹 장악력을 키웠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통하던 이른바 '부회장단'은 정 회장이 승진할 때마 입지가 조금씩 좁아졌고 순차적으로 그룹을 떠나는 수순을 밟았다.

정몽구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은 김용환 전 부회장이다. 그는 2018년 12월 수십년 동안 몸담았던 현대차를 떠나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다.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원톱' 체제를 구축한 지 석달여 만이었다. 이어 2020년 말에는 아예 그룹을 떠났다. 한때 10여명에 이르던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오너 일가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한 명뿐이다.

2016년 7월 8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가운데)이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들어설 옛 한국전력 본사 용지를 찾아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왼쪽),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과 함께 건물 철거 준비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가교 역할' 충실한 금춘수·권오갑·안병덕

물론 아버지의 측근이 무조건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던 건 아니었다. 스승과 제자로 통할 만큼 관계가 좋은 이들도 많다. 최근 들어선 스승 혹은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세대교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그룹의 금춘수 수석부회장, HD현대그룹의 권오갑 회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스승과 제자 같은 관계의 원조를 꼽자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길승 전 회장을 들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38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룹 전반을 이끌만한 경력을 쌓지 못했고 부친과 비교해 그룹 내 장악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만큼 조력자가 필요했다.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명예회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손 명예회장은 최 회장이 그룹을 경영할 준비를 갖출 때까지 과도 체제를 유지히며 후견인 역할을 자처했다. 최 회장이 그룹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힘썼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현재진행형인 곳으로는 한화그룹, HD현대그룹이 있다. 한화그룹에선 김동관 부회장이, HD현대그룹에선 정기선 부회장이 사실상 총수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조력자 역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춘수 수석부회장은 올초 ㈜한화 대표이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그룹에 몸담으며 원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권오갑 회장은 더욱 건재하다. 그는 전문경영인이지만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내년에도 여전히 지주사 HD현대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하며 그룹 경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코오롱그룹도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지주사 코오롱을 지원부문과 전략부문으로 나눠 안병덕 코오롱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원부문을, 이규호 신임 부회장이 전략부문을 맡기로 했다.

안 부회장은 코오롱그룹 전문경영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1982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40년 넘게 코오롱그룹에 몸담았다. 20년 동안 회장 비서실과 부속실에 있으면서 이동찬 전 회장과 이웅열 명예회장 곁에서 일했고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도 지냈다. 특히 그는 1996년 이웅열 명예회장이 그룹 총수로 취임하기 전 경영수업을 받는 과정도 모두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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