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vs KCGI] 주주행동 9개월 만에 협상 진척, 어떻게 가능했나지지부진한 주가, '지주사 전환' 이슈에서 찾은 엑시트 명분
김혜란 기자공개 2023-12-27 08:01:31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6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행동주의 펀드 KCGI가 DB하이텍을 정조준한 지 9개월여 만에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엿보고 있다. DB그룹이 KCGI가 보유 중인 DB하이텍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을 두고 양측이 논의 중이다.KCGI는 그동안 DB하이텍이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하며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주주행동에 나섰으나 DB하이텍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투자차익을 추구하는 펀드 입장에선 엑시트 시기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고 명분도 필요했는데 '지주사 전환'을 고리로 DB그룹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협상이 진척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이후 물밑협상 지속
KCGI의 행동주의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 3월 말 DB하이텍의 지분 7.05%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후 KCGI는 지난 6월 초 주주서한을 보내고 회계장부와 이사회 의사록 등의 열람과 등사를 신청하는 가처분을 내면서 공격 수위를 높였다.
일련의 과정에서 KCGI는 오너일가의 사익편취가 DB하이텍 주가 저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요구 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더 강한 주주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DB하이텍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6월 말 사상 최초로 기업설명회(IR)을 진행하며 그동안 미비했던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최근 발표한 3분기 IR 자료에서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 사업 로드맵을 구체화하며 성장전략 일부를 제시한 정도다.
물론 물밑에선 DB하이텍과 KCGI 고위관계자 간 협상이 계속 진행돼 왔다. 지난 6월 말 첫 대면 미팅 자리를 만든 뒤 지속적으로 미팅과 전화통화 등을 통해 논의를 진척시켜 왔다고 한다. 하지만 DB하이텍의 주가를 움직일 만한 이슈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KCGI의 DB하이텍 투자 소식이 알려진 3월 말 6만1100원에서 출발했던 주가는 22일 말 기준 5만9400원으로 오히려 떨어진 상태다.
◇지주사 전환 고리에서 찾은 실마리
주가가 지지부진하자 KCGI로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KCGI의 투자 명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DB그룹이 받아들일 만한 협상안을 만들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DB그룹이 KCGI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을 매입한다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판단해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DB하이텍이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오너일가가 주가를 일부러 억누르고 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왔다. 실제로 지주사 전환은 DB그룹의 골치 아픈 과제였다. DB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DB Inc.는 DB하이텍 지분 12.42%를 보유하고 있는데, DB하이텍 주가가 오르면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주사는 자회사가 상장사일 경우 2년 안에 지분율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DB Inc.가 DB하이텍 지분을 30%까지 늘려야 한다는 건데, DB Inc.가 수천억원을 자금을 끌어모아 지분을 약 18% 더 매입하거나 아니면 아예 DB하이텍을 매각해야 한다. DB그룹 입장에선 두 가지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DB그룹이 KCGI로부터 DB하이텍 지분을 사들이면 지주사 전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KCGI 입장에서도 소액주주 등 투자자에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마무리된다면 오너일가가 적극적으로 주가 부양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DB하이텍과 KCGI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KCGI도 지금까지 요구해 온 모든 조건들을 끝까지 고수하면 DB그룹과 평행선을 달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KCGI는 일단 이사회 기능 강화에 포커싱하며 이를 받아들여야 다음 스텝을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양측이 블록딜에 합의하더라도 KCGI가 보유 지분 전부를 한 번에 DB그룹에 넘기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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