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의 귀환]LX그룹에 올드보이가 많은 이유②선택지 없었던 구본준 회장…'구관이 명관' 기조
조은아 기자공개 2024-01-24 10:34:31
[편집자주]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흔히 나이듦을 위안하는 말로 쓰이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이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돌아왔다. 거센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 이들을 불러온 건 결국 기업들의 '위기의식'이다. '또?' 라는 의문도 들지만 돌아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더벨이 지난해 재계의 새 인사 코드로 떠오른 '올드보이의 귀환'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X그룹에는 유독 올드보이가 많다. 최근 1년여 사이만 살펴봐도 현업을 떠났던 2명의 인물이 주요 계열사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LX그룹(옛 LG그룹 포함) 출신은 아니지만 LX세미콘의 새 대표이사에 오른 이윤태 사장 그리고 2022년 말 돌아와 LX하우시스를 이끌고 있는 한명호 사장이다. 앞서 LX그룹이 출범할 때도 LG그룹을 떠났던 인물들이 속속 합류하기도 했다.이유가 뭘까.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보수적인 인사 기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인재풀 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위기에서 벗어나라'…명확한 미션
한명호 사장은 2009년 4월 LG화학의 건자재부문이 인적분할됐을 당시 초대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2012년 퇴임 이후 10년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이윤태 사장은 2020년 삼성전기 대표를 마지막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번에 복귀했다. 한 사장은 1959년생, 이 사장은 1960년생이다.
두 회사 모두 이유는 명확하다. LX하우시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실적에 큰 타격을 받았다. 주택 거래 위축과 원자재 가격 상승, 자회사 실적 부진 등의 여파로 2022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0%가량 급감했다.
LX그룹에서 LX하우시스는 두 번째로 큰 계열사다. 구본준 회장으로선 실적 악화를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0년 동안 회사를 떠나있던 사람을 구원투수로 투입한 배경엔 그만큼 절박함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사정이 나쁘기는 LX세미콘도 마찬가지다.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에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을 공급하는데 수요 하락으로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LX세미콘의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0% 가까이 감소했다.
LX세미콘의 가장 큰 고민은 단일 사업과 단일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DDI 사업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90%에 가깝다. 또 과거 한지붕이었던 LG디스플레이에 대한 매출 의존도 역시 절반이 넘는다. 자연스럽게 사업 다각화와 매출처 다변화가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거치며 체질 개선을 이뤄낸 이윤태 사장을 영입한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선택지 없었던 구본준 회장…'구관이 명관'
LX그룹에 유독 올드보이가 많은 이유는 구본준 회장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 회장은 인사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으로 말그대로 '구관이 명관'이란 기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구 회장이 처음 LX그룹을 만들어 LG그룹에서 독립했을 때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구 회장은 당시 LG그룹 시절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인물들을 영입했다.
LX홀딩스의 초대 대표이사인 송치호 전 사장 그리고 지금까지 최고인사책임자(CHO)를 맡고 있는 노인호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둘 모두 LX그룹 출범 몇 년 전 이미 LG그룹을 떠난 인물들이다. 송 전 사장은 2018년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 사장에서 물러난 뒤 고문으로 있다가 구 회장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구 회장이 LG상사를 이끌던 시기 직접 발탁해 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인호 부사장 역시 2019년 LG화학 CHO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으나 구 회장의 부름에 현역으로 복귀했다. 노 부사장은 구 회장이 LG그룹을 이끌던 시절 ㈜LG에서 인사팀장을 지냈다.
재계 관계자는 "구본준 회장이 LG그룹으로부터 독립할 때 들고나온 계열사가 그리 많지 않았고 사실상 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또 제외됐기 때문에 초반 그룹 기틀을 다질 인재를 중용하는 과정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며 "과거 측근들 위주로 초반 진용을 짠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직 오너십 세대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올드보이가 많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LX그룹 출범 이후 구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부사장의 승진에 가속도가 붙었지만 다른 그룹과 비교하면 여전히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 구본준 회장이 여전히 그룹을 직접 챙기고 있는 만큼 계열사 대표의 연령대 역시 다른 그룹과 비교해 다소 높은 편이다.
LX인터내셔널은 1964년생, LX하우시스는 1959년생, LX세미콘은 1960년생, LX판토스는 1964년생, LX MMA는 1960년생 대표가 이끌고 있다. LX MDI의 경우 구형모 부사장이 직접 대표를 맡고 있으며 LX벤처스는 벤처캐피털이라는 업종 특성상 대표가 1976년생으로 상장히 젊다.
갈길이 먼 LX그룹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LX그룹은 출범 만 3년도 되지 않았지만 LX글라스(옛 한국유리공업)를 인수했고 지난해 HMM 인수에도 관심을 보였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 역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장에 대한 의지와 욕구가 그 어느 그룹보다 강하다는 평가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구본준 회장이 그룹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보니 젊은 경영인을 발탁하는 모험보다는 '믿을맨'을 쓰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
- 아이온운용, 부동산팀 구성…다각화 나선다
- 메리츠대체운용, 시흥2지구 개발 PF 펀드 '속전속결'
- 삼성SDS 급반등 두각…피어그룹 부담 완화
조은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톱티어 부족한 '비은행'…전략 마련 고심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제2의 '베트남' 찾을 수 있을까
- 미국 증권사 인수한 한화생명…자산운용 시너지 겨냥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높은 주가 상승률…'의지'가 '타이밍'을 만나면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불리한 출발선…'내실'은 챙겼다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연착륙' 끝났다…'연말 인사'에 쏠리는 시선
- [반환점 돈 진옥동 체제]후반전 시작, 남은 과제는
- [금융지주 밸류업 비교]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균형점은
- [금융지주 밸류업 비교]'결과'로 말한다, 달랐던 시장 반응
- [한화 금융 계열사는 지금]한화생명, 본업 경쟁력과 미래 먹거리 '이상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