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문화사업 A to Z]'콘텐츠업계의 구루=미키 리' 뚝심으로 일군 한류 열풍④CJ그룹 문화사업 '키맨' 이미경 부회장, 이재현 부회장과 남매경영 체제 성공적 안착
이지혜 기자공개 2024-01-29 11:33:54
[편집자주]
예술가 개인은 가난했을지라도 예술을 키운 건 자본이었다. 유럽의 메디치 가문이 대표적이다. 르네상스 시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의 자본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 미술사에 남는 거장을 키워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식품, 건설, 전자 등 영위한 사업은 저마다 달랐어도 이들이 축적한 자본 덕분에 개인의 창의성이 작품으로, 예술로, 문화로, 산업으로 꽃 피울 수 있었다. 한국의 문화산업을 이끈 기업은 어디일까. 이들은 왜 문화에 관심을 뒀을까. 더벨이 한국 문화산업을 키워낸 기업들을 톺아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6일 14: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콘텐츠업계의 구루(Guru)’. 혹자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문화, 콘텐츠업계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다. 존경심과 애정이 담긴 표현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업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건 K-콘텐츠의 저변을 전세계로 넓힌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이다.이재현 회장이 큰 틀에서 문화사업을 CJ그룹의 주축으로서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이미경 부회장이 구체적 사업 현안을 챙기고 이끌었다. CJ그룹 문화사업의 핵심인물, 키맨을 꼽을 때 이미경 부회장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미경 부회장의 신념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당장 큰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문화와 예술을 향한 믿음과 뚝심으로 퀄리티 좋은 작품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있다. 다시 호황기가 오면 CJ그룹이 그 누구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이다.
◇전세계로 이름 떨친 '미키 리', K콘텐츠 위상 높였다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중요 행사장에 가면 이 부회장의 영어 이름인 ‘미키 리(Miky Lee)’를 연호하며 환대하는 유명인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력 감독에서부터 글로벌 톱스타까지 미키 리의 주위를 메운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문화산업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국내보다 해외 언론에서 회자될 때가 더 많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 대중문화 전문매체인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가 발표한 ‘2023 엔터테인먼트 여성 파워 100인(2023 Women in Entertainment Power 100)’에 선정됐다. 아시아인 중 3년 연속 여성파워 100인에 선정된 건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이 100인에 들 수 있었던 건 그가 총괄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가 제33회 미국 고담어워즈(The Gotham Awards) 최우수작품상과 제89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신인작품상을 받으면서 선전한 덕분이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뽑은 100인 가운데는 다나 월든(Dana Walden)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공동 회장, 도나 랭글리(Donna Langley) NBC유니버설 스튜디오 회장, 셰리 레드스톤(Shary Redstone) 파라마운트 글로벌 회장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과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비욘세(Beyoncé) 등 유명 인사가 있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2022년에는 국제 에미상 공로상도 받았다. 한국 대중문화의 유·무형 인프라를 구축하고 해외 전파에 큰 기여를 한 덕분이다. 이밖에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필러상(Pillar Award)도 받았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에서도 이 부회장이 강력한 존재감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다. CJ그룹 관계자는 “할리우드에서 한국인의 이야기가 주목받은 것은 한국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라며 “이미경 부회장이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맡아 아시아 문화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결정적 계기는 영화 <기생충>이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면서다.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받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총괄제작자로 참여한 자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며 소감을 밝혔다. 당시 그는 "한국 영화를 보러 가주시는 분들이 저희의 모든영화를 지원해준 것"이라며 "한국 영화 관객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할리우드' 꿈 꾼 이미경, CJ그룹 문화사업 토대 구축
이 부회장이 문화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이재현 회장이 드림웍스와 투자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갈 때 비행기 옆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인물이 이 부회장이다. 당시 이 회장은 누나에게 "이제는 문화가 우리의 미래"라며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자"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사업을 CJ그룹의 비전으로 제시한 건 이재현 회장이지만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자는 꿈을 현실로 이끌어내고 있는 건 이 부회장인 셈이다.
이 부회장은 1958년 4월 8일 서울에서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아시아지역학으로 석사, 중국 푸단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 있을 때 이 부회장의 유일한 낙은 일주일에 한 번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문화를 향한 열정은 날로 커졌고 외국에서 겪은 한국에 대한 열악한 인식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한국의 문화로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마침내 CJ그룹 문화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제일제당에 입사해 1998년 제일제당의 멀티미디어사업부 이사로 근무했다. 2002년에는 CJ엔터테인먼트 사업부에서 상무를 맡았고 2005년에는 부회장, 2011년부터는 그룹 부회장에 올라 재직하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뛰어, '남매경영' 성공 사례로도
이 부회장이 문화업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행사하는 데에는 그가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문화에 관심을 둔 재벌들은 재단을 만들거나 갤러리를 세우는 방식으로 조용히 예술을 향유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달랐다. 그는 현장에서 실력 있는 감독을 알아보고 그들의 작품에 직접 힘을 실어줬다. 그가 봉준호 감독의 <마더>,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박쥐>,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영화 총제작자 혹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한 배경이다.
또 문화계 인사와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에도 적극 나섰다. CJ그룹은 정기적으로 문화계 인사를 초청해 파티를 연다. 이 행사에는 국내의 유명인사뿐 아니라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오프라 윈프리 등 글로벌 스타까지 참여한다. 자본을 대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본,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까지 이 부회장이 손수 챙긴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영향력이 좋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때로 CJ그룹이 문화계 권력을 과도하게 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워낙 발이 넓다보니 정치적 리스크에 휘말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이점은 이 부회장이 보유한 CJ그룹 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CJ ENM지분을 0.11%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핵심 계열사로 꼽히는 지주사 CJ나 CJ제일제당 지분은 없다. 경영권에 대한 욕심없이 문화사업에 있어서만 남매경영 체제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CJ그룹 계열사 가운데 CJ ENM에서만 부회장이자 상근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경영 주도권을 가졌다면 이미경 부회장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해 역량을 입증하며 성공적으로 남매경영을 안착시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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