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13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조원 기부왕'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972년 설립한 경남 김해의 삼영산업이 최근 경영악화로 종업원 130명 전원을 해고하고 전면 휴업에 들어갔다. 사실상 폐업이다.해고 사유는 경영 악화다. 삼영산업은 현재 누적 부채가 160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전반적인 건설경기 악화로 건축용 자재인 타일 판매에 애로를 겪은데다 원자재, 가스비 인상 등이 이어지면서 경영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퇴직금조차 지급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최근 32억원을 마련해 지급키로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황당한 것은 경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산을 '관정 이종환교육재단'에 기부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삼영산업이 약 152억 원 영업손실을 봤던 2020년 124억53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러한 무리한 기부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삼영산업의 2022년 감사보고서는 "관정재단 출연과 경남에너지의 가스요금 추가 청구 등으로 현재 완전 자본잠식이 되었다"며 "이런 사항은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경고가 담겼다.
이 전 회장은 2002년 4월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고 지금까지 1조7000억원을 쾌척했다. 지원한 장학생이 2023년까지 1만2000여명이다. 이런 규모는 국내에는 없다.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이라고 한다. 자녀에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기부한다고 밝힌 이 전 회장의 뜻은 그 자체로 사회의 귀감이다.
시장통에서 국밥이나 찌개 등을 즐겼다하니 검소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신이 안쓰고 기부한 1조원의 위력은 감히 범인인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이 전 회장은 딱 100년을 살고 2023년 9월13일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관정의 1조원 기부가 막판에 퇴색되는 느낌이다. 수만명의 생면부지 젊은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정작 100명 남짓 자기 직원들은 제대로 챙겨내지 못했다. 이 회장이 기부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도록 수십년간 회사를 지켜 온 직원들이 모든 피해를 짊어졌다.
기부는 그 자체로 숭고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기부가 몸에 밴 부자들이 많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는 대표적인 기부 셀럽이다. 가수 션도 유명한 기부왕이다. 20년 가까이 60억원 가까운 돈을 기부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부자나 유명인들이 많지만 기부는 재산이 넉넉해서 하는게 아니다. 하루 커피 한잔 마실 돈 모아서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기부 행위다. 돈이 없다면 재능을 기부할 수도 있다. 작은 기부 행위가 나비처럼, 향기처럼 멀리 퍼져나가는 법이다.
그래서 이 전 회장의 삼영산업 해고 사태를 보면서 기부 행위의 허탈함을 감출수 없다. 해고된 직원들과 가족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한겨울에 직장을 잃을 수 밖에 없었을까. 삼영산업 한 직원은 "아시아 최대 재단을 키운 기업이 오너 사망 후 불과 3개월 만에 이렇게 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관정의 장학금을 받은 혹은 받을 수만명의 장학생과 이번에 해고된 130명 직원 가족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경중을 따져 물을 필요는 없다. 모두가 소중한 우리 이웃이다.
안하느니만 못한 기부였는지, 괜한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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