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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퇴출된다고? [thebell desk]

김용관 산업1부장 겸 부국장공개 2024-01-15 07:00:30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1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연말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시청한 영화 한편 '헌트(원제 : THE HUNT)'.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미국의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보수 혹은 우파 민간인들을 납치해 총칼과 폭탄으로 재미나게(?) 사냥하는 이야기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은 납치범들이 인심쓰듯 나눠준 총칼로 자신을 방어하지만 결국 동물보다 더 잔인하게 사냥 당한다.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B급 호러물인가 싶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현실을 풍자한 코미디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납치범들로 나오는 미국의 엘리트들은 인종이나 종교, 젠더, 환경, 사회문제 등 윤리적 가치를 수호하며 지적·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 굳게 믿지만 실제론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사냥하는 괴물이다. '내로남불'의 미국식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주의'를 대놓고 조롱하고 있다.

재계에서도 과도한 PC주의에 대한 반발이 나오고 있는걸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때 글로벌 경영에서 대세로 떠올랐던 '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를 뜻하는 경제용어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가 미국 재계에서 퇴출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의제에 대해 '자본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진보세력의 선동'이라는 식의 시각이 보수층 사이에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보수층이 거부감을 보이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는게 WSJ의 설명이다. 실제 코카콜라는 2022년 '비즈니스와 ESG'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지만 2023년에는 '비즈니스와 지속가능성'으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ESG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에서 21세기 들어 일반화된 표현이다. 2006년 유엔에서 출범한 '유엔책임투자원칙(PRI)' 협약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 재계에 등장한 시기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무렵이다. 간간히 사용되던 ESG라는 단어는 2021년 신축년 들어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2021년 재계 신년사에 공통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가 ESG였다. ESG 평가가 좋지 않으면 투자나 자금조달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ESG는 말그대로 광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3년 가량 시간이 지나면서 광풍은 지나가고 유행처럼 사라지는게 아니냐는 냉소도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그린워싱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악용 사례들이 나오면서 ESG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WSJ에서 지적한 것처럼 좌우의 이념적·정치적 이슈로까지 번지고 있다.

외국에서 만든 ESG 개념이 국내로 수입, 확산됐듯이 이같은 이념적 반발이 국내로 유입될 경우 재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인력 확보와 조직 구축 등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ESG에 대한 반감이 보수적인 기업의 특성과 맞물리면서 ESG 무용론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용어의 문제일 뿐 ESG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사실 ESG 경영은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국내 대다수 기업은 훨씬 이전부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혹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경영 활동을 해왔다. 이런 경영이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되지 않고 홍보 수단으로 변질된게 문제지 그 자체로는 탁월한 경영 시스템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기준과 시스템은 계속 진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착한 기업, 혹은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한 '툴'로서 여전히 ESG는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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