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2월 08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0월11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사고를 당한다면 누가 그룹을 이끌 것인가. 그 문제(승계)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며 "나만의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외부는 물론이고 SK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최 회장의 자녀들(윤정, 민정, 인근)을 승계 후보자로 예상했고, 그런 류의 승계 시나리오를 다루는 언론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최창원 카드를 통해 최 회장의 승계 계획의 일단이 드러났다.
사촌동생 최창원 카드는 SK그룹 내에서도 상당히 파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최창원 부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SK디스커버리는 외견상 그룹에 속해있을 뿐 사실상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원 수석부회장 역시 후보였지만 본인이 강하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고(故) 최종건 창업주가 설립했다. 창업주의 사망과 함께 동생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자리를 물려 받았고 이후 장남인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졌다. 창업주의 자녀들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사실상 독립된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룹 내에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최태원답다는 반응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SK의 변화는 결국 최 회장의 작품이다. 이윤 창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조직원의 변화, 기업문화의 혁신이 우선이라고 봤다.
그리고 구성원의 행복을 경영의 중심에 뒀다. 재벌가의 허세라는 비아냥도 없지 않았지만 결국 최태원식 딥 체인지(근본적인 혁신)는 SK의 현재를 만들었다.
내부에서 시작된 SK의 딥 체인지는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SK는 이제 정유나 반도체, 텔레콤만 바라보지 않는다. 포트폴리오 시프트를 통해 바이오, 그린, 디지털, 첨단소재 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업이 됐다.
경영 성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 32조8000억원이던 SK그룹 자산은 지난 연말 기준 327조254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재계 순위도 5위에서 2위로 세 단계 뛰었다.
매출은 1998년 37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224조1920억원으로 6배, 영업이익은 2조원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 이상 증가했다. SK그룹 시가총액은 3조8000억원에서 7일 기준 166조1510억원으로 4270% 폭증했다.
최 회장은 1998년 선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이후 38세 나이로 SK그룹 총수가 됐다. 올해로 회장직을 맡은 지 25년째다. 그룹 내에선 이번 인사를 계기로 포스트 최태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분 승계 등 복잡한 난제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큰 틀에서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듯한 인사라는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앞서 최 회장은 2021년 BBC 인터뷰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해 "기회는 (전문경영인 등)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며 "자식도 노력해야 (경영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승계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아들은 아직 어리고 본인만의 삶이 있다. 제가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현실적으로 자녀들에게 지분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가진 SK㈜ 지분은 지난 8월 기준 25.98%(1901만7262주). 세 자녀는 지분이 없다. 이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현시점 기준으로 4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거금이 필요하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최 회장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SK는 사외이사가 주축이 되는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그런 점에서 최 회장이 자식보다는 경영 능력이 입증된 최 부회장을 경영 후계자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 부회장의 리더십과 추진력은 그룹 안팎에서, 특히 최 회장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자식들을 당장 후계자로 삼기에는 구성원의 행복을 제1순위로 두는 최 회장 스스로가 불안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녀들의 경영 참여는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이뤄질 전망이다. 첫째 윤정씨는 이미 SK바이오팜의 임원으로 승진하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사석에서 종종 "65세가 되면 은퇴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그룹과 구성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다. 구성원의 행복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여정을 출발하려는 것일까. 1960년생(63세)으로 앞으로 2년 정도 남았다.
대한상의 회장 등 내년에도 활발히 대외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 실제로 은퇴 시기를 딱 65세에 맞출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본인이 없어도 굴러갈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SK그룹에 격동의 시기가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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