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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vs성장' 기로에 선 제약사]'다케다' 길 겨냥 유한양행, 해외진출 기폭제 '렉라자'②항암 신약 개발로 자신감, 경영진 변화 공감대로 시너지 구도 마련

정새임 기자공개 2024-02-20 08:51:38

[편집자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약사들은 '제네릭·상품유통·리베이트'라는 틀 안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약가규제, 불공정 관행 철퇴 등 과거와는 다른 규제환경에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더해 오너십이 바뀌는 과도기까지 겹치면서 가지각색 '생존전략'이 등장했다. '위기냐 성장이냐'를 놓고 각각 다른 전략을 펼치는 제약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19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본 최대 제약사이자 글로벌 15위권 제약기업 다케다제약은 2014년 '글로벌화'를 위해 과감한 변혁을 꾀했다. 오너십을 내려놓고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세웠다. 당시 영입된 크리스토프 웨버 CEO는 다케다를 글로벌 제약사로 키우며 현재까지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미국에 글로벌 본사를 세우고 언어 장벽을 고려해 일본어 대신 영어로 소통하도록 했다. 인수합병(M&A)도 적극적이었다. 다케다의 샤이어 인수는 일본 제약사가 추진한 최대 M&A로 꼽힌다.

'글로벌화'를 꿈꾸는 유한양행의 길도 다케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 인력 채용을 늘리고 M&A를 검토하는 것. 회사의 무게추가 연구개발(R&D)로 기우는 건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본다.

◇렉라자 기점으로 외부 영입 '활발'…'고위직=정통 유한맨' 수식 타파

정통 유한맨. 영업으로 시작해 요직을 두루 거치아고 유한양행 고위직으로 성장한 이들을 뜻한다. 해외 오리지널 약을 유한양행이 다수 품을 수 있었던 건 유한맨들이 탄탄히 쌓은 '킹메이커' 타이틀 덕분이다.

하지만 고민이 있었다. 언제까지 '남의 약'에 매출을 의존할 수 없었던 터. 다른 제약사가 복합제 등 개량신약으로 자신만의 제품 라인업을 꾸려나가는걸 보며 유한양행도 자체 의약품 비중을 키워야 할 때였다. 유한양행은 항암 신약을 개발해 퀀텀 점프를 이루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폐암 신약 '렉라자 프로젝트'는 글로벌 진출을 꿈꾸게 했다.

유한양행의 인적 쇄신은 렉라자를 기점으로 본격화 했다고 볼 수 있다. 항암제 임상 경험이 많지 않았던 유한양행이 렉라자를 글로벌 빅파마 얀센에 기술수출하면서 글로벌 임상 역량을 쌓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명실상부 최고 제약사로 꼽히지만 글로벌로 진출하기 위해선 새롭게 갖춰야할 것들이 많았다.

글로벌 경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외부에서 수혈했으나 그동안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었다. 고위직은 모두 정통 유한맨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R&D 총괄 사장 직급을 신설하고 김열홍 전 교수를 앉힌 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만큼 회사 내에서 R&D 조직에 힘을 싣는다는 얘기다. R&D의 입지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중앙연구소와 임상의학부문을 사업본부급으로 격상시키고 R&BD 본부를 신설했다. 김열홍 사장 아래 세 개의 본부를 갖췄다.


정통 유한맨인 조욱제 대표는 김열홍 사장이 주도적으로 회사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지휘봉을 건넸다. 외부 인력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도 마련했다.

현재 유한양행 사장 2명과 부사장 6명은 정확히 절반씩 유한맨과 경력직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 인력인 김 사장 아래 같은 외부 인력인 3명의 부사장(오세웅·임효영·이영미)이 있고 유한맨 조욱제 사장 아래 역시 정통 유한맨 출신 부사장 3명(이병만·이영래·유재천)이 있는 구조다.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는 구도를 구축한 셈이다.

◇전략 바꾸고 개발 속도↑…인적 쇄신으로 달라진 R&D

유한양행의 인적 쇄신에서 비롯한 변화는 보다 속도가 빨라지고 다채로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R&D 조직이 전열을 가다듬은 뒤 유한양행은 제2, 제3의 렉라자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기존에도 항암·면역 분야에서 파이프라인을 지니고 있었으나 개발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신약 물질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전력을 쏟는다.

수십곳의 바이오텍으로 뻗어있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새롭게 짰다. 지금까지 유한양행은 유망 바이오텍에 지분 투자를 해 적절한 후보 물질이 있으면 협업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방대한 투자 포트폴리오 속 렉라자라는 유망 물질을 발굴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한 기업 수에 비하면 협업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핵심 기술을 유한양행의 것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신약 개발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기술을 내재화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분 투자나 합작 법인이 아닌 직접적으로 M&A를 언급하기 시작한게 이 즈음부터다.

필요한 파이프라인과 유망 기술을 지닌 기업을 직접 사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이영미 부사장을 주축으로 한 R&BD 조직을 대거 확충했다. 중점적으로 보는 기술은 최근 각광받는 항체약물접합체(ADC)와 표적 단백질 분해(TPD)다.

올해부터 김 사장이 이사회에서 조욱제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게 되면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R&D를 중심으로 한 인적 쇄신 그에 따른 경영 전략 변화를 바라보는 우려스러운 시선도 적지 않다. 급격한 개방성이 융합이 아닌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시선이다. 글로벌화를 위해 다케다제약이 처음으로 외국인 CEO를 선임할 때에도 임직원과 주주들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유한양행 내 고위 임원진들은 변화를 감내해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이룬 듯하다. 지난 1월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에는 김 사장을 비롯해 부사장급이 총출동 했다. 재무 담당 임원도 함께 해 단지 R&D뿐 아니라 유망 물질의 상업화와 재무 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불발됐으나 당초 조 대표도 함께 할 예정이었다. 유한맨과 외부 인력이 서로의 백그라운드에 관계없이 회사의 발전을 위해 똘똘 뭉친 분위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과거 R&D 영역으로 한정됐던 경력 채용이 이제는 영업·마케팅 등 조직 전반으로 활발해지면서 조직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며 "안정보다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유한양행의 행보가 다채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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