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1일 16: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전 기간은 햇수로 10년, 혹은 그 이상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도전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오너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번에는 정몽윤 회장의 장남인 오너 3세 정경선 전무가 전면에 나선다. 현대해상의 숙원사업을 오너 경영자로서 데뷔전으로 삼는 모양새다. 인터넷은행의 성장세가 확인되면서 현대해상으로서는 사업 진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 전무가 경쟁우위를 위해 준비할 전략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계열분리 이래의 오너 숙원사업

현대해상은 2015년 법안 통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경쟁이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시장 진출을 타진했다. 첫 인가 경쟁에서는 SK텔레콤, 인터파크 등과 아이뱅크 컨소시엄을 결성해 도전했으나 예비인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 2019년의 제3 인터넷은행 설립 경쟁에서도 토스뱅크 컨소시엄의 초기 멤버로 참여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발을 뺐다.

현재 유뱅크(U-Bank) 컨소시엄을 통해 진행 중인 제4 인터넷은행 설립 경쟁은 현대해상에게 3번째 시도다. 다만 현대해상의 인터넷은행 도전기를 3수가 아닌 4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00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과 손잡고 추진했던 인터넷은행 이뱅크(e-Bank) 설립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뱅크 설립은 당시만 해도 관련 법률이 미비했을 뿐만 아니라 대우증권의 경영권이 산은으로 넘어가면서 계획이 최종 무산됐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해상이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눈여겨본 것이 10년 전보다 더욱 앞선 것임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해상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2000년의 ‘왕자의 난’보다 앞선 1999년 1월이다. 오너 2세들 사이의 지분 경쟁 때문이 아닌 금산분리가 주된 이유였던 만큼 이후 현대해상에게 범현대가 기업과의 협력 비중을 희석하기 위한 독자적 성장동력 확보는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정몽윤 회장도 2000년 상임고문으로 복귀한 뒤 2004년부터는 이사회 의장까지 맡아 전문경영인들의 신사업 발굴 지원에 힘을 더하고 있다.

정 회장의 복귀 이후 현대해상에는 7명의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이름을 올렸으나 이 기간 인터넷은행은 계속해서 현대해상의 신사업 목표를 벗어나지 않았다. 업계나 재계에서 인터넷은행을 오너의 '숙원사업'으로 보는 이유다.

◇정경선 전무, 현대해상 수익성 고민 해결로 경영능력 입증 기회

현대해상은 2023년 12월 조직개편을 통해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한 임원직인 CSO(최고지속가능책임자)를 신설했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 전무가 이 자리에 선임됐다. 정 전무가 이전까지 현대해상 바깥에서 사회적 기업 후원에 힘써왔던 만큼 재계에서는 그의 현대해상 합류를 놓고 경영권 승계 본격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정 전무가 역임 중인 CSO는 디지털전략본부와 브랜드전략본부, 커뮤니케이션본부 등 3개 조직을 총괄하는 자리다. 유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통한 인터넷은행 설립 역시 정 전무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현대해상의 인터넷은행 도전에는 오너경영인이 능력을 입증하는 첫 관문의 의미까지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순이익으로 전년 대비 34.9% 늘어난 3549억원을 거두는 등 인터넷은행은 최근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해상은 주요 5개 손보사들 가운데 수익성 개선세가 가장 더디다는 고민을 안고 있으며 인터넷은행은 현대해상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최적의 신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신용데이터가 주도하는 KCD뱅크 컨소시엄과 소상공인 관련 35개 단체의 연합체인 소소뱅크 컨소시엄 역시 제4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해 유뱅크 컨소시엄과 경쟁 중이다. 정 전무는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현대해상만이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현대해상이 경쟁에 참여한 유일한 금융사라는 강점을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은 인터넷은행의 도입 취지를 놓고 금융 소외주체를 위한 포용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3개 컨소시엄 모두 포용금융 전략을 세우는 데 골몰하고 있으며 유뱅크 컨소시엄은 △시니어 △소상공인·중소기업 △외국인 등 폭넓은 영역에 대한 포용금융을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해상은 금융서비스 안정성과 관련한 각종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형 보험사로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기여가 가능하다"며 "인터넷은행이 오너 3세의 경영능력 입증 시험대가 된 만큼 현대해상 측의 성공 열망도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