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배상 후폭풍]우리은행, 선언적 배상안 발표 '명분·실리' 모두 챙겼다⑦고객과 자율배상 과정서 협상력 확보…선제적 배상방식 발표로 타행에 길 터줘
고설봉 기자공개 2024-03-25 13:03:18
[편집자주]
금융감독원의 홍콩 H지주 ELS 배상안이 발표되면서 판매사들이 느끼는 압박도 커졌다. 당국이 나서 배상을 권고하는만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내부적 부담이 크다. 매번 소비자피해를 배상하면 향후 상품 판매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떠안아야할 유무형적 부담도 상당하다. 장기로 예상되는 배상 기간에 따른 영업력 타격도 불가피하다. ELS 배상안에 따른 판매사 영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2일 16: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은행이 홍콩 H지수 ELS 사태 관련 자율배상에 나선다. 이사회에 공식 안건으로 배상안을 올리고 이를 승인받았다. 주요 시중은행 대다수가 이번 이슈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판매 규모가 작아 부담이 적은 우리은행이 가장 앞장서 금융감독원의 자율조정안을 받아든 것으로 해석된다.다만 우리은행은 구체적인 배상비율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사회에 배상안을 승인 받은만큼 이미 자체 시뮬레이션과 판매 프로세스 점검 등을 통해 배상비율을 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과 분쟁을 해결해야하는 상황을 고려하고 다른 은행들의 결정에 영향을 줄수 있는만큼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이사회 공식 통과…4월부터 배상 시작
우리은행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홍콩 H지수 ELS 투자자에 대한 자율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오는 4월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손실 확정된 고객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조정비율 산정과 배상금 지급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우리은행은 구체적인 배상비율과 배상액 총액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조정비율에 대해서는 지난 11일 금감원이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되 투자자별로 고려할 요소가 많고 개별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될 사항인 만큼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산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해 ELS 사태 및 배상안을 설명한 손상범 우리은행 신탁부장은 이사회 참석에 앞서 기자들에 배상안 수용의 의미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짧게 브리핑했다.
손 부장은 “배상 비율에 대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론은) 고객분들의 협의를 거쳐야만 나올 수 있고,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액수가 달라지고 협의 과정에서 비율도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선언적 배상안 발표…협상력 살리고, 타행에 길 터주는 효과
우리은행의 이번 배상안 발표는 선언적인 수준에 멈췄다는 평가다. 다만 이는 고도의 전략적인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구체적인 배상안에 대한 언급을 피한 것은 향후 펼쳐질 배상 과정에서 협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구체적인 배상비율을 발표할 경우 고객들이 그 배상비율을 기준으로 은행과 협상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상비율을 50%로 설정해 발표하면 고객들이 50%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50%부터 협상을 벌이게 된다는 뜻이다.
또 고객마다 불완전 판매 및 불건전 영업행위 정도가 다를 수 있다. A 고객의 경우 불완전 판매에 해당해 100% 보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반면 B 고객의 경우는 완전판매가 증명돼 배상비율이 0%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고객마다 배상비율 산정 기준이 다른 가운데 일괄적으로 배상비율을 공개할 경우 향후 협상 과정에서 더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최근 ELS 가입 고객들이 인터넷 커뮤니트 등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등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이번 배상안 수용 결정 이후 본점 관련부서에서 일괄적으로 소비자들을 만나 자율배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본점 직원이 변호사와 함께 고객을 만나고 배상비율을 산정해 제시하면 해당 고객이 배상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이미 본점 차원에서 금감원 검사 결과와 배상권고안을 토대로 개별 고객마다 배상비율을 산정한것으로 알려졌다. 고객과 자율배상 과정에서 변호사를 통해 배상비율에 대한 외부유출 금지 등 비밀유지 약정도 맺을 것으로 보인다. 고객은 우리은행이 제시한 배상비율에 포커싱을 맞춰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번 우리은행의 배상안 발표는 향후 타행들의 배상안 발표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타행들의 경우 배상 대상 고객 수가 많고 배상액도 천문학적인 만큼 우려도 크다.
판매 규모가 작은 우리은행이 나서 다른 은행들의 배상 형식과 진행에 일종의 길을 터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약 450명의 고객에게 총 415억원 규모 홍콩 H지수 ELS를 판매했다. 이에 따라 자율조정 대상도 작고 부담도 적은 편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난번 금감원 중간 검사결과 발표와 배상권고안 발표 때 판매사로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금감원은 은행 5곳과 증권사 6곳만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이번 이슈에서 자유로운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배상안을 발표하면서 다른 은행들의 길을 터주는 것이란 해석이다. 금감원 배상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배상비율을 밝히지 않으면서 우리은행이 계획한 대로 차분하게 향후 이슈를 주도해 나갈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실시하는 만큼 뒤이어 배상안을 발표하는 은행들은 우리은행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고 정해진 수순대로 자율배상을 진행한다면 리스크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일각에선 우리은행이 구체적인 배상비율 산정 등 없이 ‘배상을 하겠다’는 선언만 한 것이란 의심도 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배상안에 대해 우리은행은 법률 검토 등을 모두 마쳤다. 이사회에 공식 안건으로 올라간 사안인 만큼 치밀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자료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배상안을 확정한 것이다.
특히 내부 검토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여부에 대해서 고객 개객인에 대한 판매 프로세스 전 과정을 리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배상을 하는 것이 배임 등 경영진의 경영 이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한 법률 검토도 마쳤다.
손 부장은 “(배임 등에 대해) 법률 검토 등 내부적으로 충분히 검토를 마쳤다”며 “우리은행 고객분들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빨리 추진을 했다”고 밝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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