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뉴 웨이브]활력 찾은 클래식, 키워드는 조성진·임윤찬·크로스오버①1년간 티켓판매액 47% 급증…스타 연주자 파워 두각
고진영 기자공개 2024-04-04 07:50:54
[편집자주]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철학책 읽기와 비슷하죠.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고, 음악은 전부를 위한 게 아니거든요."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가 했던 씁쓸한 말이다. 청중이 있어야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도 대중성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런데 만년 겨울이던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에 온기가 들고 있다. 크로스오버 장르의 약진, K-클래식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쟁쟁한 스타 연주자들의 등장이 발판으로 작용했다. 대중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현재를 더벨이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02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은 원류가 유럽이다. 국내에선 원래부터 대중적이지 않았다. 1990년대 즈음이 돼서야 향유층이 넓어졌는데 엘리트주의가 팽배하다는 인식은 여전했다. '클래식'이란 말에 담긴 범시간, 범공간적 가치와 달리 청중은 나이들고 수요층은 협소하며 티켓은 갈수록 적게 팔린다는 위기의식이 오랫동안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엔데믹과 함께 밀려 있던 내한공연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공연과 관객이 크게 늘었다.
또 필름 콘서트로 대표되는 영화음악 공연의 인기, 그리고 클래식 싱어 관련 경연프로그램의 흥행이 '크로스오버' 열풍을 불러왔다. 클래식 아이돌로 불리는 조성진과 임윤찬 등 스타 연주자의 등장 역시 기악공연 대중화를 위한 기회가 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 숙원 '대중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는 세계적 숙제로 꼽힌다. "클래식 음악이 죽고 있는가"를 묻는 화두가 수십년 동안 주기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니 아주 고질적 고민이다. 문제는 클래식 음악이 본연적으로 가진 '고상한' 이미지에 있다.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선 고상함을 내려 놔야 하는데 고상함이 사라지면 클래식 음악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골치 아픈 딜레마다.
설 자리를 잃은 클래식 음악계는 고고함을 버리고 대중성을 입히려는 노력을 여러 방면에서 계속해왔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가가 대중음악을 연주하거나 대중가수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는 교향곡 제5번 ‘Korea’에서 한국민요 ‘새야 새야’의 선율을 일부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 모두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클래식 음악계도 바닥을 치고 휘청였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0년 클래식 장르 공연 매출은 86억원으로 2019년(193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해외 아티스트와 오케스트라들의 내한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2021년엔 하반기부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등이 다시 한국을 찾았는데 이번엔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연말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회복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2022년 다시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클래식 티켓판매액이 2020년 대비 531%, 2021년 대비 72% 증가했다. 크로스오버 공연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2023년 역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이례적 호황이 계속되고 있다.
◇필름 콘서트·스타 피아니스트, 공연매출 상승 견인
지난해 클래식 장르의 티켓예매수는 308만3521매를 기록, 전년보다 24.9% 늘었다. 같은 기간 티켓판매액 역시 999억원으로 47.2% 급증했다. 전체 공연시장의 티켓예매수와 티켓판매액 증가율이 각각 14.3%, 23.5%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장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은 공연시장을 △연극 △뮤지컬 △클래식 △국악 △대중음악 △무용 △대중무용 △서커스/마술 △복합 등 9개 장르로 나누고 있다. 이중 2개 이상의 장르가 사용된 복합 장르를 제외하면 클래식은 서커스/마술 공연 다음으로 티켓예매수와 판매액 증가율이 높았다.
서커스/마술 공연이 유난히 호황을 보인 이유는 세계적 아트서커스그룹 '태양의서커스'의 38번째 작품 <루치아>가 지난해 첫 내한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기록적 흥행을 하면서 서울 공연(86회차) 만으로 부르노마스 콘서트와 싸이 흠뻑쇼 티켓판매액을 넘겼다.
그렇다면 클래식 장르의 성장을 이끈 요인은 뭘까. 공연 규모별로 1000~5000석 미만의 대극장(77%)에서 티켓판매액이 가장 많이 발생했지만 증감률만 따졌을 땐 5000~1만석 미만 공연의 티켓판매가 전년 대비 503%로 제일 크게 늘었다. 주로 이 규모에서 이뤄지는 크로스오버 콘서트 관객이 급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클래식 장르에서 티켓판매금액 상위 10개 공연을 찾아보면 전부 크로스오버 콘서트가 채우고 있다. 월트 디즈니 100주년 기념 콘서트 <더 사운드 오브 매직>과 <스즈메의 문단속>의 공식 필름 콘서트, <원신 콘서트> 등 영화나 게임 OST 관련 공연이 3개 있었고 6개는 <팬텀싱어>출신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콘서트, 나머지 1개는 <김호중 클래식 콘서트: TVAROTTI>가 차지했다.
<팬텀싱어>는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을 결성하기 위한 JTBC 경영대회다. 2016년 처음 방영했다. 시즌 4까지 제작되면서 포르테 디 콰트로, 포레스텔라, 라포엠, 리베란테 등 4개 우승팀을 탄생시켰다. 특히 포레스텔라는 지난해만 무려 4개의 콘서트가 판매액 상위 10위 안에 랭크되는 등 대형 팬덤을 가지고 있다.
성악가 김호중 역시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로 분류된다. 2019년 TV조선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가수로 변신했는데 지난해 처음 개최한 단독 클래식 콘서트
크로스오버 등 대중미디어 기반을 빼고 상위 10개 클래식 공연을 추릴 경우엔 국내 스타 연주가들의 파워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최고 티켓 매출을 낸 공연은 <키릴 페트렌코 & 베를린 필하모닉>이다. 베를린 필이 6년 만에 내한한 데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해 주목받았다. 당시 베를린 필 뿐 아니라 빈 필, 네덜란드 명문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까지 같은 시기에 내한 했지만 베를린 필 인기엔 미치지 못했다.
이 공연은 티켓 가격이 최고가 기준 55만원에 달했는데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사이트가 다운되고, 정상화 후 2분만에 매진될 정도로 관객이 몰렸다. 베를린 필은 올해부터 조성진을 상주 음악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성진은 베를린 필에 이어 사흘 만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했는데 역시 좌석이 전부 팔렸다. 지난해 티켓매출 7위(크로스오버 제외)에 랭크된 공연이다. 이 악단이 바로 다음 날 조성진 없이 진행한 공연의 경우 빈 자리가 더러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주자 티켓파워가 많이 작용했다.
이밖에 매출 5위를 기록한 11월 뮌헨 필 내한공연은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았고 피아니스트 임윤찬, 한국계 독일인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했다. 매출 9위 역시 <뮌헨 필하모닉 & 임윤찬> 공연이 차지했다.
임윤찬은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해 음악계를 놀라게 한 신인이다. 그를 두고 여러 음반사가 경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10월 영국의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데카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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