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5월 30일 07: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T는 최근 판교 신사옥 공사비 증액을 두고 쌍용건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를 냈다. 소송 대상은 쌍용건설이지만 업계는 사실상 발주처와 건설업계 간 대리전으로 본다. 결과가 발주처와 건설사 간 공사비 증액 다툼의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서다.갈등의 핵심 쟁점은 수주 계약에서 포함된 ‘물가변동배제특약’이다. 말 그대로 공사기간 중 물가상승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발주처에 부담시키지 않는 내용이다. 쌍용건설 외 한신공영, 현대건설 등도 해당 특약을 놓고 KT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KT는 그간 KT에스테이트 등으로 기지국 부지처럼 보유 부동산 개발 사업을 펼쳤다. 건설업계와 자주 얼굴을 맞대지만 과감히 소송전을 선택했다. 시위나 집회처럼 링 밖으로 돌지 말고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잔 의미다. ‘맞다이로 들어와’란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건설업계는 강경한 KT 태도에 반발한다. 하지만 재계와 관련 업계에선 당연한 선택으로 봤다는 후문이다. KT 입장에선 물가상승에 대비해 삽입한 물가변동배제특약으로 비용 리스크를 헤지한 경우다. 비용 부담 회피에 성공했는데 이를 되돌리란 요구가 황당할 수 있다.
더군다나 KT는 진행 중인 부동산 개발 사업이 많다. 공사비 증액을 전부 반영해 떠안으면 추가 비용 부담이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AI 시대 신사업 투자와 지속적인 실탄 확보가 필요한 KT에겐 달갑지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금액이다. 건설업계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는 KT의 태도를 수긍하게 하는 배경이다.
중요한 것은 건설사들도 물가변동배제특약과 이를 삽입한 KT 의도를 당연히 검토하고 계약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갑을 관계로 엮였다지만 건설 같은 사업은 수주 규모만 수백억원에 달한다. 건설사가 물가상승 예측과 손익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계약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바꿔 말하면 계약 당시 KT의 대비는 맞았고 건설사 예측은 빗나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시비 중인 계약이 맺어진 2020년 전후는 물가상승률이 크지 않았다. 향후 예측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대부분이었다. 건설업계가 ‘물가변동배제특약’에도 KT와 계약을 맺은 것엔 앞선 전망에 대한 신뢰도 한 몫 했다.
눈덩이로 불어난 공사비 부담이 안타까울 순 있다. 하지만 엄연히 경기 예측 실패의 리스크는 기업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다. 비정하게 느낄 수 있지만 상황을 반대로 뒤집으면 더 이해가 쉽다. 원자재 값이 지금과 달리 하락했다고 가정하자. 건설사들은 늘어날 마진을 이익으로 귀속하지 않고 KT에게 돌려줬을까.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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