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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조 기업은 누가 키웠나 [thebell desk]

김용관 산업1부장 겸 부국장공개 2024-06-11 07:50:12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0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잘 나가던 SK그룹에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구조조정설, 위기설 등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송까지 불거졌다. 무려 1조3800억원의 재산을 분할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SK㈜ 지분을 재산 분할 대상이라고 인정한 항소심의 판결이 나오자 시장은 벌써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블룸버그를 비롯해 주요 외신들은 잇따라 SK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SK그룹에게 악몽같았던 2003년 소버린 사태의 소환이다.

최 회장이 SK㈜ 지분을 일부 매각할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국내 지배력 기준인 2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게 근거다. 최 회장이 보유한 상당수의 자산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지분(지분율 17.73%)이다. 실제 2심 판결 이후 SK㈜ 주가는 3거래일 만에 25% 가량 뛰었다. 그만큼 SK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시장의 방증이다.

#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최 회장 보유 SK㈜ 지분을 분할 대상으로 봤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로 유입됐고 노 전 대통령의 후광 덕분에 그룹이 성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판단한 재산 분할 비율은 최 회장 65%, 노 관장 35%다. 즉 SK그룹의 기업가치 증가에 노 관장의 유무형적 기여가 35%에 달했다는 말로 해석된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에 시가총액 200조원 넘는 거대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임직원들의 기여는 온데간데 없다. 그룹 내부에선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지금의 SK가 만들어진 것처럼 비쳐지는데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비자금 유입 역시 정황 증거일 뿐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이라는게 내부의 판단이다.

일반 가정의 이혼 소송과 다르게 재벌의 경우는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오너 가족 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각종 리스크를 감수한 수많은 임직원들의 기여와 헌신이 기업가치(바꿔말해 재산 증식)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부부와 자녀 외에 3자가 끼어들 틈이 없는 일반 가정의 재산 증식 과정과 비교하면 이렇게 보는게 오히려 더 상식적이지 않을까.

특히 오너를 포함한 등기임원의 경우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진다. 경영상 의사결정에 실패한 최악의 경우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그들의 기여도는 얼마로 책정할 수 있을까.

오너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경영에 대한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은 인물에게 35%의 재산 분할권을 인정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의문이다. 2심 판결에서 놓친 부분이 아닐까 싶다.

# 이제 관심은 대법원으로 쏠린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검토하기보다 사건에 대한 법리를 따져본다. 상고를 기각하면 그대로 2심의 판결이 확정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비자금 유입 여부, 실질 기여도, 재산분할 범위 등 대법원에서 다퉈야 할 쟁점은 꽤 많아 보인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SK는 격랑에 빠졌다. 반도체 및 2차전지 경쟁력 강화 등 숙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특히 SK그룹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2차전지 사업은 여전히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설비 투자로 인해 자금 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혼 판결에 따른 경영권 위협 이슈가 현실화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위협을 막기 위해 소모한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은 결국 부메랑이 돼 목을 조를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전쟁 속에서 우리는 강력한 최첨단 무기 하나를 잃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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