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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선임사외이사제도의 활용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09-19 09:56:46

이 기사는 2024년 09월 19일 09: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의 대표로 사외이사들의 중심점이고 사내이사, 경영진과의 소통에서 가교가 된다. 물론 사외이사들은 언제든지 사내이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선임사외이사를 통하면 좀 더 공식적이 되고 전체 이사회의 논의로 발전한다. 미국과 독일에서 선임사외이사가 기업의 투자와 영업의 효율로 이어진다는 실증연구가 있다.

회사 이사회에 선임사외이사를 두는 것보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만 선임사외이사제도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활용된다. 금융기관에서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칙적으로 사외이사 중에서 의장을 선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의무적으로 선임사외이사를 두어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최근에 선임사외이사에 해당하는 선임비상임이사를 선임했다.

모든 회의의 진행에는 공통적으로 미묘한 점이 있다.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이 아무리 기계적이고 특별히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회의는 일단 그 의장의 페이스대로 진행된다. 이사회 의장이 사내이사인 경우 선임사외이사를 두면 이른바 임팩트 그룹이 형성되어서 이사회 운영 전반과 회의 진행에 변화가 온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가 다수인 회의실 안에서 이사회 의장에 덜하지 않은 무게를 가진다.

이사회에서는 형식이 실질에 영향을 미친다. 회의장을 원탁으로 하면 직사각형 테이블 회의에서와 여러가지가 달라진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마찬가지로,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거나 선임사외이사가 있어서 중심점이 되면 준비 과정에서부터 여러가지 변화가 생긴다.

선임사외이사는 이사회 밖에서 이사들간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개별 이사가 직접 회의에서 거론하기 곤란한 사안을 선임사외이사에게 전달해 회의에서 논의되게 하는 것이 예다. 선임자가 있는 그룹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서 대화의 내용도 달라진다. 선임자는 선임자의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선임자가 아니었을 경우에는 거론하지 않았을 의제도 꺼낼 수 있다. 형식이 실질을 규정하는 예다.

선임사외이사의 또 다른 역할은 이사회와 주주간 가교로 기능하는 것이다. 주주들이 어떤 채널로 이사회와 소통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나 이사회 내 의장을 포함한 사내이사와의 소통이 여의치 않거나 실패한 경우다. 특히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이 가교를 활용할 유인이 높다. 그런 주주들은 사외이사, 그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를 일단 중립으로 보거나 아니면 중립적 역할을 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기업가치를 해치는 경영권 분쟁이나 헤지펀드와의 대립이 발생했을 때 경영진이나 사내이사가 표명하는 입장보다는 사외이사들이 표명하는 입장이 분쟁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준다. 그 경우 사외이사들이 반대주주, 우호주주, 종업원,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해 하는 발언은 큰 무게가 있고 선임사외이사의 발언은 이사회 전체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선임사외이사는 이사회 안팎의 다양한 그룹간 대화를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 따라서 독립적인 위치에 있지만 사내이사들과 가장 가까운 사외이사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 이상적이다. 쉽게는 가장 오래 재임하고 있어서 이사회 의장, 사내이 사들과의 소통이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사외이사가 후보다. 그런 사외이사가 없다면 우리 문화에서는 연장자가 그 역할을 하기에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다.

2023년 미국 S&P 500 기업의 27%가 선임사외이사를 두어서 사내외에 이사회의 입장을 대표, 대변하게 했다. 2022년의 8% 수치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SEC)가 선임사외이사의 역할을 강화한 데도 이유가 있다. 2023년에 CEO가 이사회 의장을 맡은 S&P 500 기업은 44%였다.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라는 주주제안이 2023년에 가장 많았는데 그 경우 회사가 선임사외이사를 두겠다고 하면 많은 회사의 주주들이 분리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보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하는 이른바 분리모델을 상원과 하원에서 법제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도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하는 분리모델이 학계에서는 장려되고 있고 한국 ESG기준원 모범규준상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경우와 회사 상황에 따라서는 분리모델 채택이 리더십에 집중력 저하를 발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대안으로 선임사외이사제도가 활용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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