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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의 자가당착 '실험 당한 은행'

이승우 기자공개 2009-02-10 08:30:04

이 기사는 2009년 02월 10일 08: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철수가 A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는데 신용등급이 C란다. 대출 가능 금액이 적어 발길을 돌렸다.

1년 후 철수는 같은 은행을 다시 방문해 대출상담을 한 결과 최우량 등급인 A+를 받게 됐다. 직장과 연봉에 큰 변화가 없지만 지난번과 달리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등급 산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모의 지원 여부를 반영하도록 그사이 은행 신용등급 산정 방식이 내부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다 부모의 것을 더해 철수의 신용등급은 경제적으로 월등한 부모의 신용등급 B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철수의 부모는 지원받을 수 있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A 은행이 다시 철수의 신용등급을 내렸다. '아무리 높아도 부모의 신용등급보다 높아질 수 없다'로 신용등급 산정 방식이 재차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철수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이 신용 등급이 왔다 갔다 했다. 문제는 최근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등급이 내려가게 되면 다른 금융 거래에 악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A 등급으로 올라갔던 논리는 잊혀진 지 오래다.

최근 국내 은행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한 무디스를 A 은행, 철수의 부모를 우리나라, 철수를 국내 은행과 바꿔 생각하면 크게 다를 바 없다.

무디스는 지난 2007년, 전세계 은행들에 대해 외부 지원정도(JDA: Joint Default Analysis)를 고려한 새로운 평가방법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나 모회사 등으로부터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을수록 등급을 더 높게 주겠다는 논리였다.

대부분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급등한 것은 물론이고, 재무건전성이 우량하다고 볼 수 없는 은행들까지 최고 수준인 'Aaa'까지 올라갔다.

최근 국가 부도를 맞은 아이슬랜드의 한 은행은 정부지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4단계나 상향조정(A1→Aaa)됐다. 재정적자가 GDP의 무려 10%였던 헝가리의 한 은행도 같은 이유로 4단계 상향조정(A2→Aa1)됐다. 외부 지원이 없다고 가정하고 자신들만의 재정 건전성과 안정성만을 고려했을 경우, 신용등급이 각각 C와 C+인 은행들이었다. 등급 상향은 우리나라 은행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이 조치에 신용평가업계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S&P는 각국 정부가 민간의 채무상환을 보장할리 없고 정부가 구제한다고 예측하는 것도 넌센스라고 폄하했다. 피치도 국가가 지원한 사례나 이들 사례간의 관련성을 시스템으로 구체화하기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평가는 더 냉정했다. 새로운 평가기준은 세계 투자은행과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에게 맹비난을 받았고 무디스 주가는 9% 가까이 급락했다.

그럼에도 바뀐 평가 방법론을 꿋꿋이 밀어붙이던 무디스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신용등급 산정 기준을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나 메릴린치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국가 등급보다 높은 금융회사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같은 금융회사의 채무 보증까지 서주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던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실제 사례로 나타나면서 무디스는 당황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은행이 정부의 등급보다 높을 수 없다는 것도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를 의식한 듯 베아트리채 우 무디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국내 은행 등급 하향 조치에 대해 "한국계 은행들의 외화조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한국 정부의 외화표시채권등급(A2)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디스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논리를 바꾸려 하지만 평가 대상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크다. 가만히 있던 은행들만 무디스의 실험 대상이 돼버린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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