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11년 01월 31일 13: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제적으로 신용평가에 대한 의존도 완화가 추진되고 있다. 신용평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가사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신용평가에 의존하여 금융회사 스스로가 신용분석 능력을 갖추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신용평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규제나 규제 회피 요건에서는 빼라는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금융혁신은 신용평가를 이용한 리스크의 계량화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상당 부분 되돌리는 것이니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 난감한 상황이다. 신용평가의 횡포나 남용보다 미성숙이 더 큰 문제지만 국제 공조를 거스를 입장도 아니고, 자칫 회사채 시장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평가사는 물론 발행 기업과 투자자까지, 회사채 시장 참가자 모두의 관심과 분발이 필요하다.
◇ 품질 1위의 훈장
신용평가 품질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가 발표되면 모든 평가사가 불편해한다. 성적이 나쁘면 체면이 깎이고, 성적이 좋으면 보수적이고 깐깐하다는 이미지가 투영되어 발행기업이 꺼릴까 걱정한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훈장의 성격을 살펴보자. 우리 평가사들은 거의 동시에 등급을 올리고 내린다. 복수평가가 왜 필요한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데도 회사채 투자자들은 그 찰떡같은 동조화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기막히게 짚어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평가사의 연구개발 투자와 맥락을 같이 한다. 어느 평가사가 연구개발을 강화하면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 평가사에 대한 신뢰가 올라간다. 결론은 같아도 이슈를 끌어가는 호흡이 달라지고, 이 작은 차이를 회사채 투자자들은 온몸으로 공명한다. 그만큼 진지하다. 신용평가를 믿어서가 아니라, 신용평가를 읽는 것이 회사채 투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사와 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평가사의 프레임으로는 투자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결과도 아니고 과정상의 작은 차이를 상찬하는, 투자자들의 땀내가 배인 훈장이 여간 난감할 수밖에 없겠다.
◇ 평가사의 존재감
개그맨은 유행어 하나를 띄우고, 기자는 특종 하나를 잡기 위해 온갖 수고를 감수한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감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의 아우라는 경륜이 쌓였다고, 또 마냥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 평범을 부정하는 용기, 인간사회에 대한 직시로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야 비로소 우러난다.
우리 평가사의 분석능력은 글로벌 평가사에 손색이 없다지만, 평가사의 존재감은 너무나 다르다. 매번 주어진 틀에 안주하고, 스스로 틀을 만들지 못한 결과다.
신용평가의 존재감은 평가방법론에서 나온다. 선진적 평가 방법론은 더 이상 미국에서 전해진 색 바랜 매뉴얼 속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금융과 산업 현장에서 가장 적합한 사전적 부실 징후들을 찾아 체계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평가사들이 먼저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경우가 얼마나 되나. 거의 없다. 대부분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후에야 움직였다. 건설PF 우발채무를 감안한 부채조정기준을 제시했을 때 시장은 환호했지만, 어느 틈에 용두사미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BFSR(은행의 재무역량; 정부지원 배제)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당국의 신호를 기다리는 듯 마냥 도입을 미룬다.
결국 미증유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이를 관통하는 방법론 하나, 지표 하나 변변하게 내놓은 것이 없다. 차별화로 부담을 감수하기보다는 찰떡 동조화로 안전을 추구한 결과다. 이것이 우리 신용평가의 현주소요, 존재감이다.
◇ 평가사의 장두노미(藏頭露尾)
신용평가 프로세스는 대부분 규제가 아니라 평가사의 자율영역으로 남아있다. 신용평가를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당국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자율성은 신용평가의 독립성 유지에 상당히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당국이 개입할 빌미를 주지 말고 잘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평가사를 위해서나 투자자를 위해서나, 나아가 당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율을 남용하여 투자자를 불편하게 하고, 시장의 혼란을 야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늦기 전에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율을 잃거나 불행해진다.
신용평가의 자율로 남아있는 대표적인 것 하나가 ‘평가결과의 공시’다. 신용등급과 평가요지, 그리고 평가보고서를 무료 또는 유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공시라는 용어 자체가 의미하는 것처럼 정보접근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불가피한 사유로 제한하더라도 최소에 그쳐야 한다. 그것이 공시이고, 신용평가의 존재이유다.
최근 CP 신용평가의 미공시가 급증하고 있다. 어쩌다 한두 건이던 미공시가 어느 틈에 CP잔액의 8.2%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다. 가파른 증가 속도가 아찔하다(10.06: 1.0%, 10.09: 3.8%, 10.12: 7.3%).
그리고 발행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신용등급은 D등급으로 조정된다. 하지만 어째서 지난날의 등급과 보고서까지 홈페이지에서 사라지는 것일까.
신용평가의 공시를 정한 법규가 없으니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신용평가 정보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의 쓴웃음은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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