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3월 05일 08: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자본시장에 전자단기사채 제도가 도입된 지 만 5년이 지났다. 신용 위험에 취약한 단기금융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해 체질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운 정책이었다.최종 목적은 태생적 정보 비대칭성으로 다양한 부작용을 양산해 온 기업어음을 완벽히 대체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실질이 같은 이상 발행 효율성과 결제 편의성을 갖춘 전단채로의 신속한 이전이 가능하다는 게 정책 당국의 계산이었다. 도입 후 2~3년이 지나면 기업어음의 80~90%를 대체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기대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잔액 기준 195조원에 달하는 전체 단기금융시장(기업어음+전단채; CD 제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4%(46조원)로 정책 목표에 한참 떨어진다. 반면 기업어음은 150조원 안팎의 잔량을 유지하며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만기 구조를 뜯어봐도 전단채가 지극히 제한적인 용도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97%는 만기 3개월 이하로 채워져 있고, 10일 이하 초단기물도 22%에 달한다. 3개월 초과 물량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어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경상적 운영자금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초단기 자금수지를 맞추는 단순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전단채가 기업어음을 대체하고 있다기보다는, 단기조달의 보조 수단 쯤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전단채 시장의 더딘 발전은 제도 도입 초기부터 예견돼 왔다. 우선 규제적 측면에서 기업어음에 비해 열위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기 1년 이상 기업어음에 부과하는 신고의무가 전단채의 경우 3개월부터 적용된다. 상대적으로 긴 만기 물량의 발행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3년 단기금융시장 선진화 방안이 나올 때부터 일부 시장전문가로부터 지적받은 사항이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선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취약한 수요기반이다. 단기자금시장의 가장 큰손인 은행의 참여 제한은 전단채 시장 활성화를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기업어음의 경우 시중은행이 거의 절반의 물량을 중개하거나 인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8년 단기금융활성화 태스크포스(TF) 운영 때부터 은행의 인수와 중개를 허용하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은행의 회사채 인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단기사채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지위가 채권인 전단채는 증권업계 고유의 영역이라는 금융투자협회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더 이상 전단채 도입을 늦출 수 없었던 당국은 골치 아픈 금융권역간 이해상충 문제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단기자금시장의 최대 투자자인 은행을 배제한 채 출발선에 서게 됐다. 기업어음의 완전한 대체는 십년이 지나도 어렵다는 회의론이 도입 초기부터 무성했던 이유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단기자금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정책 취지도 무색해질 공산이 크다. 시중은행의 완전한 진입을 허용한 외국의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안 되는 은행 종금계정에 한해 전단채 인수의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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