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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법원의 주주경영판단 존중 시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6-19 08:00:25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9일 07:5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적대적 M&A의 본산지인 미국에서는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둘러싸고 지난 약 50년 동안 무수한 소송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경영권 방어장치의 적법성에 관한 방대한 판례법이 형성되었고 이제 그 판례들은 미국 회사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또 다른 미국 회사법의 본류는 주식회사 이사의 법률적 책임에 관한 판례들이다.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을 통해 형성된 그 판례들은 미국기업 경영자들의 행위규범이다. 그런데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조치가 이사회 결의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많은 판례는 경영권 공방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추세는 기업지배구조에서 회사소송이 차지하는 역할의 감소다. 우선 가장 강력한 경영권 방어장치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그 도입이 논의되었고 2010년에 신주인수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상법개정안이 완성되어 국무회의를 통과, 국회에 제출까지 되었던 포이즌 필(Poison Pill)이 미국에서 퇴조하고 있다. 의결권자문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2000년에 S&P 500 기업들 중 299개가 포이즌 필을 채택했었는데 2017년 1월 기준 그 수가 17개로 감소했다.

다음 원인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부상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회사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법으로 소송을 활용하는데 2015년의 삼성물산 사건과 2020년 한진칼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소송을 통해 궁극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소송 외에서의 협상과 주주총회에서 법원 결정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에 의한 것이다. 유리한 조건의 화해에 도달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들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소송이 활용된다. 법정공방은 내용이 명료하고 언론도 주목한다.

회사가 소송에서 이기고도 헤지펀드의 요구가 관철된 사례는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즈(Sotheby’s) 사례다. 소더비즈는 헤지펀드 써드 포인트(Third Point)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포이즌 필을 설치했는데 써드 포인트는 포이즌 필 무효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패소했다. 그러나 소더비즈는 치열한 위임장 경쟁에서 패배해 양측은 이사회를 15인 규모로 확대하고 써드 포인트가 3인을 지명하기로 합의했다. 또, 소더비즈는 포이즌 필의 폐기에 합의해 써드 포인트가 지분을 15%까지 늘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 합의는 소더비즈 주주들과 의결권자문사 ISS가 회사의 이사회를 압박해 주주총회 하루 전에 타결되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회사의 지배구조와 사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경영진과의 직접 소통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업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소송과 회사법의 역할을 점차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국 법원들도 기업지배구조 사건에서 법정 밖에서의 사건종결을 환영하며 그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사실 세상의 어떤 법관이 화해를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회사법과 회사소송이 기업지배구조와 경영권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기능도 감소할 것이고 법원도 분쟁해결의 절차적 기구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판례들은 이해관계가 없는 주주들이 완전한 정보에 의해 승인한 합병은 당해 합병을 결의한 이사회의 결정에 과실이 있었거나 이사들에게 이해상충이 있었다 해도 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Goshen & Hannes). 즉, 주총결의가 이사회결의 하자를 치유할 수 있다. 주주들이 의결권의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경우라면 법원이 사후적으로 주주총회결의를 심사하는 것은 당해 주주들에게 이익보다 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성이 뛰어난 주주들이 법원보다 이사회의 결정을 더 적절히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경영판단 원칙의 확장판이다.

최근의 추세가 회사소송을 담당하는 법원과 변호사들이 점차 할 일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회사관련 분쟁에서는 여전히 많은 소송이 제기될 것이고 법원의 결정과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종래와는 달리 그러한 법률적 작업이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이 줄어들 것이다. 특히 상급심이 사건을 다루게 될 가능성이 축소되면 대법원 판례도 줄어들게 된다.

결국 미래에는 경영진과 이사회, 그리고 변호사들이 법원보다 의결권자문기관이나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기록으로 남고 시장에서 공유되어서 이후의 기준으로 기능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실체적 회사법이 입법부와 사법부가 아닌 민간, 즉 자본시장에 의해 발달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효율적인 자본시장의 통제하에 놓인 이사회결의, 나아가 주주총회결의는 사실상의 회사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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