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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에코 에너지]'큰손' 만난 후계자, 공장투어에 담은 친환경 미래②교토의정서 앞둔 박지원, 발 빠른 그린 에너지 선언…M&A도 친환경 전략

허인혜 기자공개 2023-06-02 07:37:22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31일 1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은 글로벌 기업 총수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중동 '큰손' 중 하나다. 빈 살만·만수르보다 먼저 큰손으로 불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물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모하메드 UAE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 인물을 만났을 때 건넨 제안과 나눈 환담은 기업의 핵심 쟁점일 수밖에 없다.

모하메드 UAE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기 한참 전인 2010년, 아부다비 왕세자 신분으로 직접 한국의 공장을 찾은 적이 있다.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어려운 귀한 손님이 방문한 곳은 경남 창원의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이다. 아랍식 양고기를 곁들인 점심 만찬을 준비하는 데만 한달을 쏟았다는 전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왕세자에게 국내 신고리3·4호기 제작 과정을 공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미래 사업 무게추가 원자력발전 등 탈탄소에 쏠려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이날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당시 사장)이 모하메드 왕세자와 동행해 공장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카메라를 들고 손수 공장을 촬영했다.

왕세자는 13년 뒤 대통령의 신분으로 다시 한국과 만나 3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모하메드 UAE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로 차세대 원전 개발 등 친환경 에너지가 꼽힌다. 이날의 만남도 친환경 에너지를 향한 관심의 단초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교토의정서 앞둔 박지원 회장, '그린 에너지' 일찍 점찍었다
2007년 사장 취임 당시 박지원 회장. 사진=두산에너빌리티
박 회장이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전면에 내세운 건 2009년 신년사를 통해서다. 2013년을 대비해 1조원의 선제적 투자 계획을 내놨다. 왜 2013년을 지목했느냐면 그 해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터닝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협의를 담은 교토의정서 2기가 발효되는 시점이 이때다. 1차 의무감축은 38개 선진국에서만 이뤄졌지만 2차부터는 개도국도 참여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당시 개도국에 속했다. 교토의정서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졌던 기후협약들이 속속 실제 기업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화력발전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두산에너빌리티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2009년 신년사에서 그린 에너지에 방점을 찍고 조단위 투자를 예고했다. 1조원이라는 숫자는 총 투자액이자 목표 매출액이기도 했다. 전체 매출액을 에코 에너지에서 낼 수는 없겠지만 2015년부터는 매출의 10%인 1조원을 친환경 분야에서 벌어들이겠다는 계획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친환경 에너지 초기 투자는 박 회장의 사장 취임 전후로 나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했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두 배가 넘는 7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효과는 2015년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프로젝트 참여에서 R&D센터 건립까지

2000년대 중반에는 기술개발 협력 등의 투자가 이어졌다. 원자력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의 연구 후원이 대표적이다. 미국 등 미리 교토의정서가 시행중이던 선진국이 키우는 기술에 협약하기도 했다.

2006년은 특히 두산중공업이 탈탄소 기술개발에 집중했던 때다. 당시에는 완전한 탈탄소보다는 '청정 석탄'이라는 개념이 최신 친환경 트렌드였다.

두산중공업이 참여했던 퓨처젠(Future Gen)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프로젝트로 석탄을 가스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발전 시스템에 활용한다는 게 골자다. 탄소는 영구·분리·저장하는 무공해 발전소를 지향했다. 두산중공업의 투자 비용만 2015년까지 9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2007년 두산밥콕 본사에서 청정 발전 실험을 마친 당시 조안 러독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차관(왼쪽)과 이안 밀러 두산밥콕 사장. 사진=두산에너빌리티

또 다른 예가 같은 해 이뤄진 석탄 IGCC(석탄가스화 복합발전) 기술개발 협약이다. IGCC는 석탄을 수소와 일산화탄소가 주성분인 합성 가스로 전환하고 정화 과정을 거쳐 복합발전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탄소를 저감하는 한편 효율이 높아 친환경 기술로 불렸다.

이 시기 IGCC 기술개발의 물꼬를 트면서 2008년 박 회장이 진두지휘한 대전 신재생 에너지 R&D 센터가 건립되게 된다. 그동안 외부 연구인력 협업을 이어왔던 박 회장은 자체 연구시설 확보가 시급하다고 보고 직접 대구광역시와의 업무협약(MOU)을 주도해 이 센터를 세웠다. 연구인력만 200명으로 시작했던 센터는 풍력과 연료전지를 포함해 특히 IGCC 기술 개발에 천착했다.

◇'기술+친환경' 두 마리 토끼 노린 박지원의 M&A

인수합병(M&A) 포트폴리오도 친환경으로 조금씩 선회하고 있었다. 인수 초기에는 일단 기술 확보에 방점을 찍는 한편 피인수 기업이 성장하면 친환경 에너지 부문도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를 더했다.

2006년 미쓰이밥콕 인수가 그랬다. 미쓰이밥콕 인수는 박 회장이 당시 사장으로서 '숙원사업'이라고 불렀을 만큼 의미를 뒀다. 미쓰이밥콕은 보일러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석탄 화력발전 부문 포트폴리오 강화에 가까웠지만 향후에는 친환경 설비를 더해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친환경 성과는 인수 3년 뒤 드러났다. 미쓰이밥콕 인수로 출범한 두산밥콕이 청정발전소 실험에 성공하면서다.

두산밥콕은 순산소 연소기술을 개발했다. 석탄을 태울 때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인 공기 대신 순 산소만 주입해 연소 후에는 이산화탄소와 물만 배출되도록 하는 기술이다. 2007년 두산밥콕의 본사가 있는 영국 정부가 국책과제로 선정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300억원을 투자해 프랑스 알스톰, 미국 B&W를 눌렀다.

2007년 이후 M&A는 박 회장이 사장에 오른 뒤 이뤄진 딜로 박 사장의 주도권 아래 있었다. 캐나다 HTC사 지분을 사들인 것도 친환경 투자다. HTC는 두산밥콕과 공동으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인 'CCS'(Carbon Capture & Storage)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HTC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지분 매수 비율은 15%로 100억원을 투입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을 기술 전면에 내세운 기업을 속속 사들였다. 2011년 두산중공업의 유럽 자회사 두산파워시스템(DPS)이 독일 발전설비 업체인 AE&E 렌체스를 870억원에 매수했다. AE&E 렌체스는 순환유동층 보일러와 탈황설비 등 친환경 발전 원천기술 보유사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순환유동층 보일러 기술은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고 연료 활용도가 높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19년 공개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막바지 조립작업 모습. 두산에너빌리티는 이탈리아 기업 인수 실패 이후 6년 만에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석탄 화력의 친환경 대안으로 불린 가스터빈도 사실 M&A로 기술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분야다. 2013년 추진한 이탈리아의 안살도 에네르기아 인수전이다. 당시 가스터빈 제조는 세계에서 한 손에 꼽을 기업만이 보유했던 원천기술이다.

최종단계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국가전략 사업이라는 이유로 반대해 무산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년 뒤인 2019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 기술의 독자개발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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