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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 다시보기]‘물적분할’만 타깃...사각지대엔 ‘모·자회사 상장’ 만연①부실한 규제 근거… 현물출자 등 우회법 택하는 기업과 형평성 문제도

최윤신 기자공개 2023-11-30 13:18:56

[편집자주]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은 지난해 국내 증시의 가장 큰 화두였다. 자본시장의 문제 제기에 당국은 속도감 있게 관련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불만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주주가치 훼손을 야기한 중복상장이 아니라 물적분할에 치중한 규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벨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추진되는 중복상장 사례들을 들여다 보고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규제의 불합리성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4일 09: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2년 초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계기로 국내 증시에서 모회사와 자회사 중복 상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불거졌다. 급기야 이어진 대선에서 주요 자본시장 공약으로 등장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물적분할 기업의 중복 상장’에 대한 논의가 급진전됐고, 규제로 이어졌다.

1년여가 지나자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중복 상장’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물적분할 상장이 아니더라도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에 따르는 ‘더블 카운팅’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물적분할이 아닌 중복상장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규제 시행 후 물적분할기업 상장 '필에너지' 유일

정부는 지난해 9월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을 내놓으며 기업의 물적분할과 물적분할로 설립된 기업의 상장에 대해 규제했다. 먼저 기업의 물적분할 과정에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이 원치 않는 물적분할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없앴다.

이와 함께 물적분할로 설립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기업이 상장에 나설 때는 거래소에서 추가적인 정성적 평가를 하도록 했다. 물적분할 상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주가치 침해에 대해 기업의 자구노력을 의무화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당국의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 주요 내용 모식도.
해당 조치가 이뤄진 이후 실제 물적분할 기업의 상장이 어려워졌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지난해 9월 거래소의 물적분할 기업에 대한 정성적 심사 요건을 통과해 상장에 성공한 사례는 지난 7월 증시에 입성한 필에너지가 유일하다.

필옵틱스로부터 물적분할 설립된 필에너지는 쉽지 않은 심사를 거쳤다. 상장예비심사 청구 이후 승인까지 통상적인 기간보다 긴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기간동안 필옵틱스는 3차례의 주주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끈질기게 주주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 결과 2년간의 현금배당 규모와 필에너지 주식 현물배당,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 등을 통해 총 160억~22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필에너지가 당초 목표로 했던 상장후 시가총액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필에너지의 상장 이후 물적분할 5년내 기업의 상장 예비심사 청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SSG닷컴, 후성글로벌 등의 상장 시도가 예상됐지만 연기했다. 결국 물적 분할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이후에 예심청구가 이뤄질 것이라고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물적분할 설립 기업의 상장 계획 연기의 주된 이유는 시장침체 혹은 대내적 사정 때문”이라면서도 “5년이 지나면 물적분할 심사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 상장기업의 물적 분할에 소액주주에 대한 주식매수 청구권이 도입되면서 상장기업의 물적분할 자체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여전히 다수의 상장사가 물적 분할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물적분할 설립 회사의 상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 곳은 없다.

물적분할 기업들은 물적분할 이후 신설법인을 비상장상태로 유지하겠다거나 상장 시 모회사의 특별결의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분할계획서 상에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 "동시상장이 디스카운트" 지적에도 물적분할만 손봐

다만 시장에선 현재 물적분할 조치의 유효성과 형평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주가치 훼손의 문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에서 발생하는데, 정작 규제는 물적분할 만을 타게팅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실제 관련 규제가 이어진 올해 국내 주식 시장의 IPO 대어로 꼽히는 두산로보틱스와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은 상장 모회사를 두고 있는 자회사였다. 이들은 중복상장과 관련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다만 모회사 주주 일각에선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실제 주주가치가 훼손됐는지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물적분할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한 중복상장 규제가 충분치 않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물적분할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규제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물적분할과 상장제도 개편 과정에서 당국은 ‘물적분할·상장된 유망 사업부문의 가치가 모회사 주식가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자본시장연구원의 관련 리포트 내용과는 맥락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지난 2022년 7월 공개된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물적분할과 모자기업 동시상장의 주요 이슈 리포트에서는 “물적분할의 쪼개기상장은 2010~2021년 기간 17개에 그쳐 그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에 해당 리포트는 논의의 범위를 해당 기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신규상장한 모·자기업 동시상장 사례로 넓혀서 연구했다. 이같은 연구를 통해 “모자기업의 동시상장은 기업가치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뚜렷이 나타난다”며 “동시상장은 모자기업 모두의 기업가치에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결론냈다.

물적분할을 대체할 우회 방식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물적분할을 대신해 신설법인에 사업양수도 등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분을 취득하면 지배구조 상 물적분할과 동일한 효과를 갖게 된다. 시장 일각에선 이런 우회로에 대해 별도의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 이미 상장을 위해 물적분할을 단행한 기업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실제 제도 시행 이전에 물적분할 설립된 기업들은 상장심사 관련 규제의 소급적용으로 인해 5년간 강화된 심사를 받아야 상장이 가능한 반면, 사업양수 등 현물출자로 설립된 기업은 이런 심사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물적분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던 지난해 이미 KT가 현물출자 방식으로 KT클라우드를 설립한 바 있다. KT클라우드는 올 들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재무적투자자(FI)들과 7년안에 상장하겠다는 목표를 수립, 상장을 공식화했다.

현행 규정상으론 이런 우회방식으로 설립된 회사의 상장을 규제하지 못한다. 만약 KT클라우드가 설립 5년 이내에 상장하더라도 심사 과정에서 거래소는 KT 주주들에 대한 소통노력을 평가할 필요가 없다. KT는 신설 자회사 주식의 현물배당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결국 기업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물적분할에 초점이 맞춰진 규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모든 중복상장을 규제하긴 어려운 만큼 물적분할에 초점을 맞춰 논란에 대한 급한 불을 끈 효과가 있었다"며 "규제가 도입 된 이후 물적분할 뿐 아닌 다른 방식의 중복상장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주주가치보호책을 마련하는 등 긍정적 효과도 나온다"고 봤다.

그럼에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자본시장의 주주권한에 대한 의식이 성숙한 만큼 중복상장으로 발생하는 주주권한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바라본다.

업계 관계자는 “물적분할은 하나의 방법론일 뿐 결국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와의 더블카운팅이 문제“라며 “중복상장이 모회사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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