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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다리는 SK이노베이션]배터리 전환 '딥체인지', 위기와 기회 갈림길①정유업 한계 넘을 승부수…사업 확장기, 연이은 대내외 환경 변화에 발목

정명섭 기자공개 2024-04-29 07:33:27

[편집자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SK이노베이션의 재무부담을 키우고 있는 배터리 사업 이야기다.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적자 터널의 끝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멈출 수는 없다. 배터리 사업에는 SK그룹 오너가의 의지가 담겨 있어 어떻게든 SK의 미래로 키워야 한다. 더벨은 SK이노베이션과 SK온의 배터리 사업 현황과 향후 전략 등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6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설립된 대한석유공사(유공)가 모태인 국내 최대 정유사다. 남부러운 것 없는 '기름집'에도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었다. 지하자원의 한계, 환경문제의 주범이라는 꼬리표 등은 SK그룹이 배터리를 에너지 사업의 한 축으로 낙점한 계기가 됐다.

배터리 연구는 일찌감치 시작했지만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기 시작한 2010년대에 총수의 공백으로 투자 결정이 지연되면서 후발주자 입지가 고착화됐다.

2020년 이후 막이 오른 배터리 사업 확장기에는 일련의 사건과 대외 환경이 길을 막아 아쉬움을 남겼다.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조단위 합의금 지출, SK온 기업공개(IPO) 불발, 고금리 기조로 인한 경기 둔화, 전기차 캐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SK온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까지 재무부담이 커진 계기다. 'SK온의 경쟁력 강화'는 그룹 차원의 과제가 됐다.

◇기술 개발 한발 빨랐지만 양산체계 구축 늦어 후발주자로

SK그룹의 배터리 등 친환경 사업 전환은 1982년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발언에서 출발했다. 최 선대회장은 유공 임직원들에 정유뿐 아니라 가스, 전기,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축적 시스템 등을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회사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유지를 받들어 회장에 취임한 1998년에 리튬이온배터리를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노트북과 캠코더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였다. 2004년에는 배터리용 분리막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2005년에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팩을 개발했다.

그러나 기술 개발 성과를 사업으로 연결하는 건 엄연히 다른 얘기였다. 배터리 양산체계 구축이 경쟁사 대비 늦어지면서 SK이노베이션은 후발주자가 됐다. 이는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기 시작한 2010년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는 서산공장이 준공한 2012년 9월이다. 경쟁사 대비 1년가량 늦은 시점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수 없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최 회장이 돌아온 2015년 이후부터다. 2015년 1413억원 수준이던 배터리·소재 신증설 총투자액은 2016년 4343억원으로 늘었다. 2016년은 최 회장이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갑작스러운 죽음)'를 맞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한 시기다.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의 생존법은 결국 투자였다. 배터리 산업이 과거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유사하다고 보고 대규모 대량생산체계를 빠르게 구축해 경쟁사를 따돌리는 전략을 폈다. SK이노베이션은 그해 설비 증설 경쟁에 뛰어들어 배터리 생산능력이 연산 1GWh를 넘어섰다.

2017년부터 배터리와 분리막은 SK이노베이션 사업 부문의 한 축으로 발돋움한다. 그전까지 '석유개발 기타사업'으로 분류된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그해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설비와 관련해 책정한 총소요자금은 1조8254억원까지 늘었다.

◇IPO 타이밍·고금리 기조...결정적 시기에 아쉬웠던 순간들

최 회장이 2020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별로 '파이낸셜 스토리'를 만들라"고 주문한 후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 투자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재무성과에 더해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실행 계획을 만들자는 개념이었다. 정유·석유화학이 여전히 핵심이었던 SK이노베이션의 딥체인지는 단연 배터리였다.

SK이노베이션은 이듬해 '카본 투 그린'을 새 비전으로 내세웠다. 같은 해 10월에는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출범했다. 2020년 7조6957억원이던 배터리·소재 설비 투자 총소요자금은 2021년에 20조원을 넘어섰다. 서산공장 증설, 미국 조지아주 1·2공장 설립 등을 확정하면서 필요자금이 크게 늘었다. 포드와 총 10조2000억원을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 3개를 짓기로 한 것도 투자금이 늘어난 요인이다.

돈 쓸 곳은 많았지만 조달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아쉬운 건 기업공개(IPO) 타이밍이었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SK온보다 1년 빠른 2020년 9월 LG화학에서 분사한 후 2022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10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확보했다.

SK온도 같은 길을 걷고 싶었으나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물적분할+상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감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등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각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 상황이 악화하자 SK온은 원하는 수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워졌다.

2021년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과 관련해 합의금 2조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도 뼈아팠다. SK온은 2021년과 2022년에 5000억원씩 총 1조원을 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했다. 1조원은 전치가 연 11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설비(연산 7.7GWh)를 구축할 수 있는 금액이다. SK온은 나머지 1조원도 작년부터 로열티 명목으로 나눠 갚는 중이다.

SK온은 2022~2023년간 프리IPO와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 차입 등 모든 조달 방법을 동원해 약 20조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현금창출력 회복이 지연되면서 대외에 공표한 손익분기점(BEP) 달성 시기는 2020년에서 2021년, 2022년, 2023년 4분기 등으로 계속 미뤄졌다.

◇남은 배터리·소재 투자금액 17조원...자체 현금창출은 아직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앞서 분리막 사업을 분할·상장(SK아이이테크놀로지)해 2조2000억원을, SK엔무브(당시 SK루브리컨츠) 지분 40%를 1조1000억원에 매각해 배터리 자금 소요에 대응했지만 재무부담 확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K이노베이션의 사업보고서상 배터리·소재 설비 투자에 들어갈 자금은 40조원(2023년 말 기준)까지 늘었다. 기투자한 금액은 약 23조원으로, 아직 17조원이나 더 투입해야 한다. 남은 북미투자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와 내년 중에 자본적지출(CAPEX)이 피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올해도 이어지면서 SK온은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태다. SK온향 물량이 80%에 달하는 SKIET도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

지난 3월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SK이노베이션의 장기발행자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BBB- 미만은 '투기 등급(Speculative Grade)'으로 분류된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로 SK이노베이션의 차입 부담이 예상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S&P글로벌의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최대 과제로 'SK온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건 이같은 위기감을 반영한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을 SK엔무브나 SKIET 등과 합병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로부터 배터리 사업 구조 개편과 관련한 자문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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