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29일 07시5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리온이 충북 진천에 4600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최근 5년간 식품 업계에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글로벌 투자를 확장하는 분위기에서 한국에 투자를 한다는 것도 의미 있게 볼 부분입니다."글로벌 대외 변수와 내수 침체에 따라 유통 기업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식품 기업들은 원재료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는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가격 정책을 바꾸는 것도 제약이 많다. 출입처 미팅을 할 때면 어려운 시장 상황에 대한 토로를 하거나 그럼에도 업계에 긍정적인 이슈가 있는지를 꼭 묻는 편이다. 오리온의 이번 투자 계획에 담긴 함의도 그 과정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삼성이나 현대차가 발표하는 대규모 투자금에 비해 '4600억원'이 과연 의미 있는 숫자인지 의문이 들었다. 전체 산업 군에서 비교했을 때는 크지 않은 규모이고 '국내 투자'라는 범위 때문에 발표 당시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투자 업종을 식품으로 좁혀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최근 5년간 국내 식품 업계에서 이만한 규모의 설비 투자 계획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12월 삼양식품이 해외 첫 생산 시설 건설을 위해 2014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오리온의 이번 투자 계획은 이를 두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규모를 넘어 눈여겨볼 지점은 투자 재원이다. 약 30여 년간 해외 시장에서 씨를 뿌리고 거둔 성과를 통해 마련된 것이다. 중국 법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은 지난해 오리온에 1335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1995년 중국 법인을 설립한 이래 첫 수확이었다. 베트남 법인에서도 1000억원대 배당금을 수령했다. 이 배당금을 국내 투자 및 신사업,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 산업은 국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설비 투자를 통한 성과 기대치가 높지 않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단위당 매출이 적고 현지 생존을 위해 지속적인 재투자가 필요한 구조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에서는 제조업처럼 해외 수익을 국내 투자로 선순환시키는 모델을 만들기 쉽지 않았다. 최근 K푸드 열풍 속에서도 주요 식품사의 해외 법인은 여전히 적자가 많다.
하지만 오리온은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한 후 국내에 투자하면서 성장 구조를 한 단계 진화 시킨 것이다. 단순히 설비 확장의 차원이 아니다.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R&D 주도권을 강화하고 'Made in Korea'를 품질 신뢰의 상징으로 삼아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
물론 주요 산업군과 비교하면 오리온의 행보는 첫 걸음에 불과할 수 있다. 제조 대기업처럼 산업 지형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식품 업계 전반에 주는 메시지는 상당할 것이다. 내수 침체와 글로벌 변수 속에서도 뿌리에 집중하는 이 선택이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국내 설비 투자 발표에 대해 '꿈 보다 해몽이 좋다'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리온이 한국을 글로벌 전략의 '심장'으로 삼아 장기 게임을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선택은 브랜드 신뢰와 글로벌 경쟁력의 격차를 만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오리온이 만들어갈 글로벌을 향한 심장 박동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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